엔비디아의 암(ARM) 인수 계약이 무산될 것으로 알려졌다. 반독점 규제 리스크를 감안한 엔비디아가 스스로 인수를 포기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미국발 경쟁법 집행 강화로 인한 영향이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계속됐던 인수합병 호황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25일
<블룸버그> 보도를 보면, 엔비디아는 암 인수 계획 철회를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투자자들에게도 이번 계약이 성사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고 한다. 미국의 세계 최대 그래픽처리장치(GPU) 제조업체 엔비디아는 2020년 10월 영국 반도체 설계 업체 암을 400억달러(약 48조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인 만큼, 삼성전자와 퀄컴 등 경쟁사들이 잇따라 반대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엔비디아 행보에는 미국 경쟁당국의 제동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지난달 행정법판사의 기업결합 금지명령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유럽연합(EU)과 영국 경쟁당국도 이번 기업결합을 심도있게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컸다. <블룸버그>는 “다른 모든 국가에서 기업결합이 승인되면 중국이 불허할 예정이었다”고 보도했다.
코로나19 이후 나타난 인수합병 호황에 본격적으로 ‘노란불’이 들어온 모양새다. 미국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후 경쟁당국은 계속해서 인수합병에 대한 제재 강화를 예고해왔다. 다만, 이목이 집중됐던 인수합병이 실제로 무산되는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이번에는 당국이 ‘수직결합’에 제동을 건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수직결합은 부품과 완제품처럼 생산 공정상 관계가 있는 기업 간의 결합으로, 직접적인 경쟁사끼리의 결합인 수평결합과 대비된다. 그동안 미국 경쟁당국은 효율성 증진 효과를 감안해 대부분의 수직결합을 승인해왔다.
대규모 인수합병을 추진해온 기업들은 긴장하는 분위기다. 최근 게임회사 액티비전 블리자드를 687억달러(약 82조원)에 인수하겠다고 나선 마이크로소프트(MS)가 대표적이다. 엠에스는 구글·아마존 등 다른 빅테크 기업들과 함께 경쟁당국의 주된 타깃으로 거론된다. 이들 기업은 지난해 역대 최다 수준의 인수합병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뉴욕타임즈>는 “(업계에서는) 경쟁당국이 예상됐던 것보다도 더 나아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경쟁당국은 경고의 수위를 더욱 높여가고 있다. 특정 기업의 인수합병 계약을 두고 “이사회를 통과하지 말았어야 하는 계약”(연방거래위)이라거나 “전례없는 시장지배력으로 이어질 것”(법무부)이라고 비판하는 발언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구글 비판론자’로 알려진 조너선 캔터 법무부 반독점국장은 지난 24일 “(경쟁을 저해하는 인수합병에 대해서는) 금지명령을 청구하는 것이 경쟁을 보호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리나 칸 연방거래위원장도 최근 방송 인터뷰에서 “(페이스북-인스타그램 같은) 인수합병에는 면책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걸 시장이 알아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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