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부위원장. 유럽연합 집행위 제공
카카오톡,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구글 플레이스토어….
이런 온라인 플랫폼들을 일종의 ‘기간설비’로 보고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유럽이 최근 이런 내용의 디지털시장법(DMA)을 도입하기로 확정하면서 그 선두에 섰다. 기간설비처럼 온라인 플랫폼도 어떤 기업이든 공평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취지다. 다소 파격적인 내용인 만큼 전세계의 입법 흐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7일 유럽연합(EU)의 최근
발표를 보면, 디지털시장법에는 일부 플랫폼에 ‘프랜드’(FRAND) 원칙을 강제하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프랜드는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인 거래를 뜻한다. 정당한 이유 없이 거래를 거절하거나 과하게 비싼 값을 받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주로 중요한 특허를 보유한 기업에 부과되는 의무다. 특허를 무기로 다른 기업들을 경쟁에서 따돌리지 말라는 취지지만, 기업의 자율성을 크게 제한한다는 지적도 받는다. 유럽연합은 일정 규모 이상의 앱마켓과 소셜 미디어, 검색엔진 등 3가지 플랫폼에 프랜드 의무를 부과하기로 했다.
인스턴트 메신저 서비스에는 더 강력한 규제가 적용된다. 이른바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 의무다. 앞으로 왓츠앱처럼 규모가 큰 메신저를 운영하는 기업은 상호운용성을 보장해야 한다. 다른 메신저 이용자들도 왓츠앱 이용자와 대화를 주고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조항들은 기간설비 규제의 원리와 닮아 있다. 철도망처럼 독점이 더 효율적인 기간산업의 경우, 한 기업이 시장을 독점하도록 내버려두되 독점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강도 높은 규제를 부과하는 게 일반적이다. 다른 기업들도 해당 기간설비를 공평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각종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경쟁법에서는 이를 ‘필수설비 이론’이라고 부른다. 플랫폼도 이용자 수가 많을수록 플랫폼의 가치가 올라가는 ‘네트워크 효과’ 탓에 독점이 더 효율적이라는 분석이 있다. 필수설비 이론이 플랫폼에 등장한 배경이다.
미국에서도 이런 목소리가 등장한 바 있다. 리나 칸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은 2017년 펴낸 논문
‘아마존의 반독점 패러독스’에서 필수설비 이론을 제시했다. 아마존의 자연독점을 불가피한 현상으로 인정하고, 그 대신 입점업체 등을 차별하지 못하게 규제하자는 것이다.
이런 규제가 전세계적인 흐름이 될지는 미지수다. 경쟁업체 쪽에서는 더 적극적으로 투자할 유인이 되지만, 반대로 이미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기업 쪽에서는 투자 유인이 크게 줄기 때문이다. 품질이 좋은 플랫폼에 다른 기업들이 ‘무임승차’를 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프랜드 원칙이 다소 추상적이라 현장에서 혼선이 빚어질 가능성도 있다.
유럽은 그럼에도 이런 규제가 꼭 필요하다고 본다. 이제 GAFA(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를 통하지 않고서는 다른 기업들이 소비자들에게 접근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졌다는 이유에서다. 마르그레데 베스타게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은 “은행과 전기통신, 교통, 에너지 분야에 적용되는 규제와 비슷한 법을 만든 것”이라며 “특정 기업이 특별한 역할을 하는 시장은 규제 감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