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가 19일 오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실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가 경기 악화 시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당장 다음 달 금융통화위원회부터 물가뿐만 아니라 경기 상황을 함께 고려하겠다고 그는 강조했다. 미국과 한국 경제 상황은 다르기 때문에 같은 속도로 빠르게 금리를 올리기는 어렵다는 언급도 그는 내놨다.
이 후보자는 1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인사청문회에 참석해 “지난 14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아직 경기의 하방 위험 보다 물가의 상방 위험이 더 큰 점을 반영해 금리를 1.25%에서 1.50%로 인상했다”며 “그러나 앞으로 통화정책 운용에서는 높아진 불확실성을 고려해 물가 위험과 경기 위험이 어떻게 전개될지 면밀히 살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향후) 5월, 7월 금리 결정에서는 수치(데이터)를 보고 성장과 물가 양자를 균형적으로 고려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후보자는 이날 “(과거 저물가 시대와 다른) 물가 상승 국면이 적어도 1~2년은 지속될 수 있다”면서도 동시에 “글로벌 경기 둔화로 성장세가 기존 전망보다는 약화될 수 있다”고 경기 우려도 드러냈다. 취임 이후 물가와 가계부채 대응으로 추가 금리 인상은 이어가지만, 경기가 둔화할 경우 언제든 인상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우리 경제는 해외 의존도 높으므로 경기 상황이 변하면 거기에 맞춰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고도 말했다.
이 후보자는 미국의 강한 긴축 행보를 한은이 그대로 쫓기는 어렵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물가 상승률이 2배 이상 높은 반면 성장률은 4%대 중반으로 빠르게 금리를 올릴 여지가 있다”며 “한국의 경제 성장률은 미국만큼 건실하지 않으므로 미국보다 조심스럽게 금리 인상 속도를 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금리 결정(의 잣대)은 국내 경제가 우선”이라며 “미국처럼 (속도를) 빨리 갈 필요는 없다. 미국의 통화 긴축에 따라 금리 역전 가능성이 있지만, 이는 감내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본유출 가능성이 있으나 경제 펀더멘털이 양호한 만큼 단기적으론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며 “제가 걱정하는 것은 원화 절하(환율 상승)에 따른 물가 상승 압력”이라고 덧붙였다.
이 후보자는 정부 경제 정책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견해를 드러냈다. 그는 새 정부가 편성하려는 추가경정예산에 대해 “만약 (추경) 양이 매우 커서 거시적으로 물가에 영향을 주면 정책당국과 얘기해 어떻게 (물가를) 조절할지 한은도 관여하겠다”고 말했다. 현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에 대해서도 “최저임금이 점진적으로 올라갔다면 오히려 이 기간(문재인 대통령 재임 기간) 최저임금이 더 올라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 너무 많이 올려서 자영업자에 부담을 줬기 때문에 오히려 최저임금에 대한 인식이 나빠졌다”며 “(최저임금 적정 수준은) 지역과 업종별로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는 “목표는 서민의 주택 안정과 주택 공급”이라며 “강남 지역의 안정화를 정책 목표로 삼으면 부작용이 너무 크다”고 밝혔다.
국회는 이 후보자의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여야 합의로 채택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 후보자의 임명을 서두른다면 이르면 이번주 중 취임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전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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