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29일 서울 한 대형마트의 장난감 판매대. 연합뉴스
경기도에서 중학생 2명과 유치원생 1명을 키우는 주부 유아무개(46)씨는 최근 뛰는 물가에 아이들 간식값을 대기도 버겁다. 특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치킨의 경우, 프랜차이즈뿐 아니라 시장에서 파는 ‘골목치킨’까지 가격이 줄줄이 올랐다. 유씨는 “다섯식구가 먹으려면 한번에 2마리는 사야 하는데, 이제 최소 4만원 이상이 드니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며 “생활비 중 한 달 간식비 액수를 5만원 높게 잡았는데, 과자값부터 치킨값까지 줄인상되니 이걸로 충당이 될지 의문이다”라고 하소연했다.
서울 영등포에 사는 직장인 이아무개(46)씨는 즐겨먹던 생선회를 선뜻 집어들기 겁난다고 했다. 동네 마트나 횟집에서 1인분에 2만5천원이면 싱싱한 모듬회를 구매할 수 있었는데, 최근 들어 가격이 오른 것은 물론 양도 줄었다. 이씨는 “동네 횟집에서 먹었던 1인분짜리 모듬회가 3만원으로 5천원이나 올랐더라”며 “횟집 사장님 말로는 지금까지 안 올리고 버티느라 계속 적자가 났다고 하던데, 한 달에 최소 4번 갔던 횟수를 줄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에 육박했다. 지난 3월부터 두 달 연속 4%대 상승률을 보였는데, 정부는 앞으로도 상당폭의 오름세가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통계청이 3일 발표한 ‘4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지난 4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 같은 달에 견주어 4.8% 상승했다. 이는 2008년 10월 이후 13년6개월 만에 가장 큰 상승폭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0월부터 다섯달 연속 3%대를 보이다가 지난 3월(4.1%) 10년3개월 만에 처음으로 4% 벽을 넘어선 바 있다. 두 달 연속 4%대 상승을 보인 건 2011년 11∼12월(연속 4.2% 상승) 이후 10여년 만에 처음이다.
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지난달까지만 해도 하반기로 가면 지난해에 (물가 상승률) 높았던 것 때문에 역기저가 있을 것으로 봤는데, (앞으로) 상당폭의 오름세가 지속할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는 생각이 든다”며 “현재 수준을 1년 내내 그대로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올해 물가 상승률은 3.9%가 된다. 당분간 오름세가 둔화할 요인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누적 물가 상승률은 이미 4.1%다.
물가 4.8% 상승을 가장 크게 이끈 품목은 석유류였다. 석유류는 1년 전 같은 달보다 34.4% 상승하며 지난 3월보다 오름세가 가팔라졌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교착상태가 장기화하고 미국 원유 재고가 감소한 영향이다. 휘발유(28.5%), 경유(42.4%), 자동차용 엘피지(LPG)(29.3%)뿐만 아니라 등유(55.4%)도 크게 올랐다. 석유류와 가공식품을 합친 공업제품 물가는 1년 전보다 7.8% 올라 2008년 10월(9.1%) 이후로 가장 많이 올랐다. 개인서비스 물가도 1년 전보다 4.5% 상승했다. 원재료비와 운영경비의 상승으로 인해 외식물가가 크게 오른 영향이다. 외식물가는 지난 3월에 이어 두 달 연속 6.6% 상승했다. 생선회가 10.9% 올랐고 치킨도 9%나 올랐다.
물가의 장기 추세를 보여주는 근원물가(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도 3%대로 올라섰다. 지난달 근원물가 상승률은 3.1%로 2011년 12월(3.6%) 이후로 가장 크게 올랐다. 구매 빈도와 지출 비중이 높은 품목을 골라 작성해 ‘체감 물가’로 불리는 생활물가지수는 5.7% 올라 2008년 8월(6.6%) 이후 가장 크게 상승했다.
정부는 당분간 물가상승 압력이 지속할 것으로 보고 ‘고유가 부담완화 3종 세트’ 법령을 신속 개정하겠다는 계획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오전에 열린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주요 선진국 물가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의 영향 등으로 유례없이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으며 이를 반영해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이 주요국 연간 물가전망을 상향 조정하는 등 당분간 물가상승 압력이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현 경제팀은 물러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물가안정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고유가 부담완화 3종 세트는 △유류세 인하폭 확대 △엘피지 판매부과금 감면 △경유 유가연동 보조금 지원 등을 위한 관련 시행령 또는 규정을 개정하는 내용이다. 정부는 원자재 수급부담 완화를 위해 납사 조정관세 인하, 고부가 철강제품 페로크롬 할당 관세 인하도 검토하기로 했다.
한국은행도 이날 오전 물가상황점검회의를 열어 소비자물가가 당분간 4%대의 오름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한은은 “공급망 차질이 심화한 가운데 곡물을 중심으로 세계식량가격 상승세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지혜 유선희 조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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