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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고물가 대응’ 중산층 세금 수십만원 줄여주고 취약계층은 소외

등록 2022-07-21 16:10수정 2022-07-22 02:44

14년만에 소득세 하위 과세표준 상향조정
연봉 7800만원 중산층에 최대 감세 혜택
세수 줄어들면 취약계층 지원 여력 고갈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1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제55차 세제발전심의위원회'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1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제55차 세제발전심의위원회'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정부는 21일 발표한 세제 개편안에서 서민과 중산층의 세 부담을 완화하겠다며 소득세 과세표준 구간 조정에 나섰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고물가 시대에 어려움을 겪는 중산층과 서민층에 대해 세 부담 경감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핵심은 14년간 1200만원, 4600만원으로 고정되어 있던 하위 2개 과표의 상한을 각 1400만원, 5000만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것이다. 아울러 총급여 1억2천만원 초과자에는 근로소득 세액공제 한도를 현행 5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줄인다. 고광효 기재부 세제실장은 “소득세는 누진세율 구조여서 아래 구간을 조정하면, 고소득자까지 감세 혜택이 돌아가기 때문에 세액공제 한도를 일부 조정해 고소득자 혜택이 적정 수준이 되도록 조절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득세를 비롯한 이번 세제 개편으로 연 소득 7600만원 이하 소득자는 총 2조2천억원의 감면 혜택을, 연 소득 7600만원 초과 고소득자는 총 1조2천억원 감면 혜택을 볼 전망이다.

전문가들도 오래 정체되었던 과표 구간 조정의 필요성은 인정하는 편이다. 물가는 꾸준히 오르는데 과표 구간은 그대로라 실질소득의 변화가 없어도 높은 세율 구간에 진입해 세금은 늘어나는 ‘소리 없는 증세’가 이뤄져 온 탓이다. 소득세 과표 구간이 2008년 1200만원, 4600만원, 8800만원으로 정해진 뒤로 최고세율 구간이 신설됐을 뿐 구간 조정은 없었다.

문제는 우리나라 근로소득자 10명 중 약 4명은 이미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아 소득세 감세 혜택은 중산층에게만 돌아간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근로소득자 면세자 비율은 2014년 이후 줄어드는 추세였지만 2020년에는 6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서 37.2%를 기록했다. 정부는 이번 과표 구간 상향조정으로 면세자 비중이 1%포인트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이번 소득세 과표 구간 조정으로 가장 큰 감세 혜택을 볼 납세자는 과표가 5000만원(총급여 약 7800만원)인 사람이다. 이들은 연 세액이 현행 기준 530만원에서 476만원으로 54만원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과표 2650만원(총급여 약 5000만원)인 사람은 연 세액이 170만원에서 152만원으로 18만원 줄어든다. 총급여가 1억2천만원이 넘는 근로소득자는 세액공제 한도 조정으로 감세 폭이 최대 24만원으로 고정된다.

윤 대통령이 틈만 나면 고물가 국면의 ‘취약계층 지원’을 강조해왔지만, 납세액이 적어서 감세 혜택도 보기 어려운 이들에 대한 지원은 여전히 미흡하다. 게다가 이런 감세로 세수가 줄면 취약계층 지원에 필요한 재정 여력이 고갈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납세액이 없거나 적은 취약계층이야말로 고물가 국면에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소득세 개편 혜택에서 배제될 뿐 아니라 직접 지원을 받기도 어려워지는 셈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세금 인하를 통한 물가 대응은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고물가 국면에서 늘어나는 세수를 취약계층 직접 지원에 쓰는 정공법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과표가 오래 정체되어 있었기에 조정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사실상 혜택은 중산층이 가장 많이 볼 것”이라며 “재정의 역할이 중요한 시점에 소득세를 비롯해 전반적으로 세수 중립을 지키지 않는 방식의 세제 개편이 이뤄져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정부는 서민·중산층의 세 부담 완화로 ‘민생 안정’을 꾀하겠다면서 다양한 개편방안을 들고 나왔지만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올해 말 종료될 예정이었던 신용카드등 사용금액 소득공제를 3년 연장하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신용카드 소득공제는 연말정산 때 연간 급여액의 25%를 초과한 신용카드 사용액의 15%를 소득에서 공제하는 제도다. 세원 양성화라는 도입 취지를 이미 달성했음에도 일몰이 다가올 때마다 관성적으로 연장되고 있다. 게다가 정부는 공제 한도를 ‘통합·단순화’하겠다면서 총급여 1억2천만원 초과 고소득자에 대해서만 신용카드 소득공제 한도(200만원→250만원)를 늘려주기로 했다. 전통시장, 대중교통, 문화비에 각 100만원씩 적용되던 공제 한도는 통합하기로 했다. 올 하반기 대중교통 사용분에 대한 공제율은 기존 40%에서 80%까지 올리기로 했고, 문화비 소득공제에 영화관람료도 포함하기로 했다.

저소득 가구의 소득 지원을 위한 근로·자녀장려금 개선도 기대에 못 미쳤다. 현행 2억원 미만이었던 재산 요건을 2억4천만원 미만으로 넓혔고 최대지급액도 약 10%씩 인상하기로 했다. 근로장려금은 가구당 15∼30만원씩, 자녀장려금은 자녀 1명 당 10만원 늘어난다. 이로 인해 근로·자녀장려금 대상인원이 66만4천 가구 증가하고, 지급금액은 1조1300억원 늘어난다. 정부는 노동자의 식사비 부담 완화를 위해 식대에 대한 소득세 비과세 한도도 월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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