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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올겨울은 괜찮다지만…러시아발 ‘가스대란’ 장기화 대비해야

등록 2022-09-05 09:10수정 2022-09-05 10:01

유럽 가스대란 “혹독한 겨울” 예고
‘샤워 5분 안에 끝내기’ ‘신호등 소등’
에너지 소비 줄이기 안간힘

독일 내년 전기료 10배 인상 예정
프랑스는 에너지 배급제 검토

유럽, 러시아 가스 대체재 확보 나서
한국과 LNG 수입 경쟁할 듯

재생에너지 확대 단기간에 안돼
가스·전기 요금 현실화로
에너지 수요 줄여야 위기 대응 가능
러시아는 최근 시설 정비를 이유로 독일로 연결되는 가스관 노르트스트림의 가스 공급을 중단했다. 사진은 지난 3월 촬영한 노르트스트림1 가스관 모습. 루프민(독일)/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는 최근 시설 정비를 이유로 독일로 연결되는 가스관 노르트스트림의 가스 공급을 중단했다. 사진은 지난 3월 촬영한 노르트스트림1 가스관 모습. 루프민(독일)/로이터 연합뉴스

“풍요의 종말을 맞을 수 있는 험난한 시기를 앞두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이 말처럼 유럽은 올겨울 혹독한 겨우살이를 각오해야 한다. 유럽연합(EU) 천연가스 사용량의 36%를 공급(2020년 기준)하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서방의 제재에 불만을 품고 유럽으로 향하는 가스관 밸브를 잠그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올해 상반기 동안 유럽에 공급하는 천연가스 규모를 지난해 공급량의 70% 수준으로 줄였다. 지난 7월에는 하루 평균 1억3000만㎥(세제곱미터)를 공급했는데, 이는 지난해 하루 평균 공급량 3억7000만㎥의 3분의 1 수준이다. 러시아는 최근 가스관 터빈 정비 등을 핑계로 독일로 연결된 ‘노르트스트림1’의 가스 공급량을 정상 물량의 20% 수준까지 낮췄다. 또 폴란드를 경유해 독일로 이어지는 ‘야말-유럽’ 가스관은 아예 공급을 중단했다.

유럽연합은 가스 소비 감축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유럽연합은 올해 8월부터 내년 3월까지 천연가스 사용을 15% 감축하기로 합의했다. 이를 위해 공공기관과 쇼핑몰, 사무실, 상점 등의 냉난방 온도를 제한하고, 관광 명소의 야간 조명과 신호등까지 통제하고 있다. ‘샤워 5분 안에 끝내기’와 에어컨 가동을 줄이기 위한 ‘노타이 패션’ 등 시민들의 에너지 절약을 유도하는 각종 캠페인도 진행하고 있다.

유럽의 천연가스 대란은 전기를 비롯한 에너지 요금의 가파른 인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영국은 오는 10월1일부터 적용하는 에너지 가격 상한선을 표준가구 기준 연간 3549파운드(약 557만원)로 책정했다고 <가디언> 등이 최근 보도했다. 현행 1971파운드보다 80% 인상됐고, 1년 전인 지난해 10월 1277파운드보다 3배 가까이 올랐다. 독일과 프랑스도 내년에 전기료를 10배 이상 올릴 예정이다. 특히 프랑스는 올겨울에 에너지 배급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

유럽연합이 러시아와 가스 공급에 극적으로 타협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가스 공급 차단은 러시아 경제에도 큰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서방의 경제제재가 당장은 효과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화하면 러시아 경제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가 유럽으로 향하는 가스관 밸브를 마냥 잠가둘 수는 없다. 임원혁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유럽이 올겨울 가스 대란을 실제로 겪는다면 서방과 러시아가 가스 공급과 관련해 타협을 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유럽의 가스 대란은 우리에게도 더는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다. 유럽연합이 러시아 천연가스의 대체재를 찾아 나섬에 따라 우리나라의 엘엔지(LNG·액화천연가스) 수급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유럽은 러시아로부터 가스관을 통해 공급되는 피엔지(PNG·파이프라인 천연가스)를 주로 사용해왔는데, 독일 등이 최근 카타르에서 엘엔지를 공급받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카타르는 우리나라의 최대 엘엔지 수입국(전체 수입량의 25% 차지)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러시아의 유럽연합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 현황 점검’ 보고서에서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과 이에 다른 유럽연합 경제의 생산 차질이 현실화될 경우 우리 경제에는 유럽 수출 둔화, 에너지 수급 불안, 산업생산 차질 등이 초래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우리나라의 엘엔지 수급 상황은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돼 있다. 한국가스공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엘엔지 수입 물량 가운데 80%가 10년 이상 중장기 계약으로 이뤄져 있다(2020년 83.4%). 그만큼 단기적인 가격변동에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는 구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8월 초 국내 엘엔지 재고량 부족을 우려하는 언론 보도가 잇따르자 보도자료를 내어 “장기 계약과 현물 구매 등 이미 확보한 물량 도입으로 재고 수준이 꾸준히 상승 추세에 있다. 특히 동절기 시작 전인 11월에 가스공사의 엘엔지 재고가 만재재고(저장시설의 약 90% 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지난 4월부터 현물 구매 등을 통해 적극 확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장 올겨울에 유럽과 같은 가스 대란을 겪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럽발 가스 대란이 장기화한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유럽연합이 전세계 엘엔지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되면 그동안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이 경쟁하던 시장에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하게 돼 엘엔지 물량 확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다. 이는 엘엔지 가격의 급격한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내년 1월물 천연가스 선물가격(8월19일 기준)은 MMBtu(25만㎉ 열량을 내는 데 필요한 가스양)당 미국(HH) 기준 9.55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2달러대를 유지했던 것과 비교하면 5배 가까이 뛴 것이다. 유럽(TTF)과 아시아(JKM) 선물가격은 각각 73.12달러와 61.0달러였다. 이들 가격 역시 지난해 8월과 비교하면 4~5배 오른 수준이다.

유럽 주요국들은 올겨울을 대비하기 위한 가스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올해 상반기에 엘엔지 2136만톤을 수입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821만톤의 3배 가까운 양이다. 가스인프라스트럭처유럽(GIE)에 따르면 유럽의 가스 저장 설비는 8월2일 기준 70.54% 채워져 과거 5년간 평균(70.32%)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11월1일까지 가스 저장 설비의 80%를 채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보고서(세계 에너지시장 인사이트)에서 유럽이 가스 저장 목표를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유럽으로의 가스 공급 증가는 다른 지역의 공급이 감소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신흥 개도국의 에너지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천연가스를 전량 수입하는 우리나라가 가스 대란에 대비해 쓸 수 있는 카드는 많지 않다. 화석연료의 수급 상황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재생에너지를 대대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확실한 해법이지만, 이는 단기간에 이뤄지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당장 천연가스를 비롯한 화석연료의 수요를 줄이려는 노력을 먼저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현재의 에너지 위기는 미국 주도의 서방과 러시아·중국으로 양분된 ‘에너지 냉전’ 체제로 굳어지고 있기 때문에 전쟁이 끝나더라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에너지 수요를 먼저 줄이지 않으면 앞으로 4~5년 동안 돌파구를 찾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정치 논리에 따라 왜곡된 요금체계가 발목을 잡는다. 우리나라의 주택용 도시가스 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들 가운데 네번째로 싼데, 상위 세 나라는 캐나다, 미국, 영국으로 모두 가스전을 갖고 있다(주택용 전기요금도 미국과 유럽 선진국들에 비해 싸다). 한국가스공사가 엘엔지를 비싸게 들여와 소비자에게 저렴하게 팔면서 손실을 떠안는 구조다. 한국가스공사는 주택용 도시가스를 싸게 팔아서 생긴 손실을 한국전력공사에 발전용 엘엔지를 비싸게 파는 방식으로 떠넘기고 있다. 이러한 ‘교차보조’ 요금체계로 인해 한전의 손실은 더욱 커진다.

왜곡된 요금은 에너지 수요를 증가시킨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9월1일치)에서 “스페인 정부가 6월부터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한 결과 가스 화력발전이 4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 국가들의 에너지 요금 인상 억제 정책은 가스 수요를 증가시켜 올겨울 에너지 배급제를 실시할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파른 가스 요금 인상은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가 가스 요금보다 더 싸면 그만큼 수요가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에너지 요금 인상은 서민들에게 큰 타격을 준다. 따라서 취약계층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소득 하위 1~2분위(0~40%) 계층에 대한 현금 지원이 세금(유류세) 감면이나 요금인상 억제보다 더 효과적인 정책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오는 10월부터 전기와 도시가스 요금을 올릴 예정인 윤석열 정부가 귀담아들어야 할 조언이다.

이춘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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