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2일 오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재벌 개혁’을 위해 문재인 정부에서 신설된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국이 축소된다. ‘친기업’을 내세운 윤석열 정부가 재벌 감시·견제 구실을 해온 공정위의 힘을 빼는 것으로 보인다. 재벌그룹들의 ‘눈엣가시’이자 ‘재벌 저승사자’로 꼽혀온 기업집단국 축소는 재벌 개혁 후퇴의 신호탄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5일 국민참여입법센터에 따르면, 공정위는 기업집단국 내 지주회사과를 폐지하는 내용의 공정위와 소속기관 직제 시행규칙 개정령안을 지난 2일 입법 예고했다. 지주회사과 정원 11명 가운데 6명을 감축하고 5명은 평가대상에서 제외해 상설 인원으로 만드는 것이 뼈대다. 지난해 5월 행정안전부가 공정위 기업집단국을 정규조직으로 확정하면서 지주회사과만 1년 뒤 재평가를 받도록 했고, 평가 결과로 폐지가 결정된 것이다. 행안부는 지주회사과 폐지의 사유를 밝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위는 5명으로 지주회사팀을 꾸리는 방안을 행안부 등과 협의 중이다.
지주회사과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이번 결정이 내려졌다. 지주회사과는 지주회사 설립·전환 과정을 관할하고 재벌 일감 몰아주기 등 지주회사 제도 위반 행위를 조사하는 역할을 해왔다. ‘재벌 저격수’로 불린 김상조 전 공정위원장이 2017년 취임해 기업집단과를 국으로 확대하면서 지주회사과가 신설됐다. 공정위의 대기업전담부서를 확대하는 등 역할을 강화하겠다던 문재인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 일환이었다. 지난해 지주회사 전환 과세이연 특례도 내년 말까지 2년 연장되면서 앞으로 지주회사과의 역할이 더 중요해지는 국면이었다. 공정위 관계자는 “재벌그룹들의 지주회사 전환이 다 끝나지 않았고, 지주회사의 위법 행위 감시나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활성화 등 지주회사과의 역할이 적지 않은데 인원이 반토막 나면 기능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업집단국과 지주회사과는 내내 재계의 눈엣가시였다. 기업집단국이 만들어질 때 재계에서는 과거 ‘재벌 저승사자’ 역할을 했던 조사국의 부활이라는 반발도 적지 않았다. 실제로 기업집단국 소속 5개 과 가운데 기업집단정책과를 뺀 나머지는 모두 조사 기능을 가지고 있다. 공정위는 김대중 정부 시절 조사국을 신설해 재벌 감시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해왔으나 2005년 대폭 축소된 바 있다. 김상조 전 위원장이 기업집단국을 세우면서 ‘공정위 정상화’라고 표현했던 이유다.
지주회사과는 문재인 정부에서조차 존폐 위기에 놓여있었다. 기업집단국은 2019년에 처음 행안부의 정부 부처 신설기구 성과 평가를 받았고 2021년에 재차 평가를 받은 뒤에 정규조직화에 성공했다. 지주회사과는 지난해에도 1년의 유예기간 후 재평가를 받기로 하면서 임시 조직으로 연명해왔는데, 약 5년 만에 폐지 수순을 밟게 된 것이다.
한 전직 고위공직자는 “지주회사과를 없애려면 5년 전 이 조직을 만들 때 명분이 됐던 상황과 조건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정도는 합리적 평가가 전제되어야 한다”며 “5년 사이에 시장 집중이 사라지고 대기업의 소유지배 구조가 투명해졌는지, 그렇지 않다면 공정거래법 규제를 대신할 만한 감시나 견제 장치가 잘 작동되고 있는지 설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직 개편이 재벌 개혁 후퇴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강정민 경제개혁연대 연구위원은 “11명이 하던 업무를 5명이 하게 되는 문제를 넘어서 지주회사 관련 주무과가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관련 정책 수립이나 조사 부분에서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대기업 집단에 대한 감시와 견제에서 가장 핵심적 역할을 하는 기업집단국에 대한 인력 축소는 사실상 ‘자제령’으로 읽힌다”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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