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27일 미국 뉴욕에서 연방준비제도가 금리 인상을 발표한 뒤 제롬 파월 의장의 기자회견이 텔레비전에서 중계되는 가운데 뉴욕증권거래소 직원들이 업무에 열중하고 있다.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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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원-달러 환율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2009년 이후 처음으로 1300원을 넘어섰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불확실성이 정점에 달하던 2020년 봄에도 1200원대 중반을 찍고 다시 낮아졌다. 환율이 급등하면서 수입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국내 생산자물가와 소비자물가의 상승으로 전이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상승세는 다소 꺾였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국제 원자재·곡물 가격이 급등하면서 물가 불안은 더욱 가중됐다.
지난 20여 년간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넘어섰던 경우는 경제위기라 불리는 큰 충격이 발생한 때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를 겪으며 원-달러 환율은 1900원을 상회하기도 했으며,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다시 1500원까지 오른 이후 오랫동안 1100원대 전후에 머물렀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코로나19 대유행 극복을 위해 대규모 유동성 공급을 단행했다. 2020년 2월 말 4조2천억달러에 불과하던 미 연준의 자산은 2020년 말 7조4천억달러로 늘어났고, 2022년 7월 말 8조9천억달러로 늘어났다. 지난 2년간 사상 초유의 유동성 공급에도 연준은 코로나19 대유행 장기화 등을 이유로 물가가 낮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21년 10월 6%를 상회한 이후, 2022년 6월에는 9%를 넘어서면서 40여 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연준은 2021년 11월 테이퍼링
(자산매입 축소)을 시작으로 2022년 3월 기준금리를 인상(0.25%포인트)했고, 5월에는 빅스텝(0.5%포인트), 6월과 7월에는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을 단행했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빠르게 올리면서 7월 말 기준 우리나라(2.25%)보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높아지는 ‘금리 역전’ 현상까지 일어났다.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달러화의 실질실효환율(Real Effective Exchange Rate)이 평가절상되는 상황이다. 실질실효환율은 국제결제은행(BIS)이 매달 발표하는 세계 60개국 통화의 대외 실질가치인데, 각국의 물가상승률과 교역량을 반영해 산출한 환율을 말한다. 2010년 100을 기준으로 그 이상이면 평가절상, 이하면 평가절하됐다고 한다. 연준이 유동성을 회수하기 시작한 2021년 11월 이후 2022년 6월까지 달러화는 9% 평가절상됐지만, 엔화는 9% 평가절하, 유로화와 원화는 각각 2% 평가절하됐다. 우리나라 원화의 실질실효환율(2010년=100 기준)은 2019년 108.5를 기록했으나 2022년 6월 102로 6.5% 떨어졌다. 한편 2022년 6월 말 실질실효환율에서 미국 달러화는 28% 평가절상, 유로화는 8% 평가절하, 일본 엔화는 역사상 가장 큰 40% 평가절하된 상황이다.
코로나19 극복 과정에서 풀렸던 유동성의 영향 등으로 물가가 급격히 오름에 따라 연준은 기준금리를 빠르게 인상하고 있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달러화 가치가 강세로 돌아서면서, 상대적으로 미국의 수입물가는 낮아지고 소비는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2022년 2월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이를 ‘역(逆)환율전쟁’(Reverse Currency War)이라고 표현했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급격히 인상하자, 우리나라는 물론 유럽 등 주요국도 기준금리 인상에 동참하면서 수입물가를 낮추려는 형국을 ‘전쟁’이라 한 것이다.
사실 ‘환율전쟁’이라는 단어가 쓰인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2010년 브라질의 기두 만테가 재무장관은 미국과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이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화폐가치를 떨어뜨려 수출을 늘리려는 전략을 쓰는 것’에 항의하면서 ‘환율전쟁’이라 표현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미국은 완화적 재정·통화 정책으로 소비와 투자를 확대하고, 달러화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을 늘리려 했다. 이에 따라 엔화 가치가 강세(2008년 달러당 110엔 전후에서 2011년 70엔대로 낮아짐)를 보이자 일본은 2012년부터 ‘아베노믹스’로 불리는 유동성 공급 정책으로 엔화 가치 하락을 유도했으며, 2015년 달러당 120엔대로 다시 상승했다. 한편 미국과 일본의 유동성 공급으로 달러화와 엔화 가치가 절하되자 유럽중앙은행(ECB)도 2014년 하반기부터 유동성을 공급하면서 환율전쟁에 가담했다는 것이다.
한 나라의 환율이 적정 수준보다 높으면(저평가) 수출 증가, 외화 유입, 주가 상승과 환율 하락의 선순환이 일어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면 수출이 호조를 보이면서 성장을 견인했다. 하지만 최근 세계 주요국 모든 통화가 달러 대비 약세를 보이면서 원-달러 환율 상승의 효과를 온전히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또 고물가·고금리·고환율, 이른바 ‘3고’ 현상으로 세계경제가 힘든 가운데 중국을 포함한 글로벌 경기둔화와 높은 에너지 가격 등으로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서는 등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연준이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할 것으로 예상하는 시점에서 변동성이 커진 외환시장, 원-달러 환율의 높은 파고를 슬기롭게 헤쳐나가야 할 것이다.
김용 금융전문가 goldheade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