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0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국은행 제공
“인플레이션을 목표 수준으로 되돌리기 위한 ‘마지막 걸음’(last mile)은 지금까지보다 쉽지 않을 것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우리나라는 아직 인플레이션에 대한 긴장을 늦출 단계가 아니라는 발언을 내놨다. 물가 상승세 둔화를 이유로 정책금리 인하 논의를 시작한 미국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사실상 기준금리 인하 기대에 선을 그은 것으로 풀이된다. 한은은 소비자물가상승률이 내년 말 또는 2025년 상반기께 목표치(2.0%)에 도달하겠으나 그 속도는 더딜 것으로 내다봤다.
이 총재는 20일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간담회’에서 “앞으로 물가 둔화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인플레이션에 대한 긴장을 늦추기에는 아직 이른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국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지난해 7월 6.3%로 고점을 찍은 뒤 지난달 3.3%까지 떨어진 상태다. 한은 물가 안정 목표치인 2.0%까지는 1.3%포인트 더 내려가야 한다. 한은은 목표치 근접 시점을 내년 말 또는 2025년 상반기로 보고 있다.
이 총재는 ‘마지막 걸음’이 매우 어려울 것으로 바라봤다. 그는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가격의 향후 추이와 관련한 불확실성이 큰 가운데 누적된 비용인상 압력의 영향이 지속되고 있고 노동비용도 여전히 높은 상황”이라고 했다.
실제 국내 소비자물가상승률(10월 3.8%, 11월 3.3%)은 미국(10월 3.2%, 11월 3.1%)보다 높아진 상태다. 비용 상승 압력에서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 물가 상승세 둔화 속도가 미국에 견줘 더디다는 얘기다. 미국은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이 초반에 소비자가격에 바로 반영돼 지난해 6월 물가 상승률이 9.1%까지 치솟았고, 에너지 가격이 안정세를 찾자 그만큼 물가가 빠르게 내려오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정부와 기업 차원에서 원자잿값 상승에 따른 소비자가격 인상을 최대한 자제했다. 이 때문에 물가가 미국보다 덜 뛰었으나 누적된 원가 상승 압력이 뒤늦게 소비자가격에 반영되면서 물가 상승세 둔화 속도를 더디게 만들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가공식품, 공업제품 등의 가격 조정 빈도가 높아지고 있으며, 최근 주류 가격, 여행 및 숙박비, 대중교통요금 등도 계속 오르는 추세다.
비용 상승 압력을 더 키울 요인도 여전히 남아 있다. 내년에는 가격을 못 올렸던 전기·도시가스요금의 점진적 인상, 유류세 인하 환원, 대중교통요금 추가 인상 등의 조처가 추진될 수 있다.
한은은 구인난이 있는 미국보다 강하지는 않으나 우리나라에도 노동시장의 물가 상승 압력이 있다고도 내다봤다. 한은은 “임금상승률이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둔화했음에도 생산성이 하락하면서 단위노동비용 상승률이 팬데믹 이전보다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노동시장에서의 물가 상승압력이 상존해 있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이날 이런 물가 불확실성을 고려해 기준금리 인하에 대해서는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그는 미국이 우리보다 근원물가상승률이 높음에도 정책금리 인하 논의를 시작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두 나라의 경제 구조가 다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연준 정책금리 변화 조짐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과할 가능성도 거론했다. 이 총재는 “금리 인하를 논의한 사실이 있다는 파월 연준 의장의 말이 예상을 크게 벗어난 입장 변화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시장이 과잉 반응하는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연준의 의도보다 시장금리가 과도하게 내린 것 일 수 있다는 얘기다.
전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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