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부터 시범운영에 들어간 납품단가 연동제를 ‘의무화’하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도리어 중소기업에 해가 될 수 있다는 국책연구기관의 보고서가 나왔다. 모두에게 이로울 수 있는 제도를 성급하게 법제화할 경우 ‘제로섬 게임’으로 변질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이화령 연구위원은 27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납품단가를 원자재 가격에 연동해 위험을 분담하는 것은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거래 상대방 모두에게 이로울 수 있으나, 이를 의무화한다면 효율성이 저해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 교통국이 조달에서 시행한 단가연동조항 효과를 분석한 선행연구를 살펴보면, 납품단가 연동제는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 모두에게 이득이 될 수 있는 제도다. 단가연동조항 도입 결과 수급사업자는 원자재 가격의 불확실성을 원사업자와 분담할 수 있고, 이러한 ‘리스크 프리미엄’이 반영되어 당초 계약단계에서 낙찰가가 하락해 원사업자도 이득을 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제도를 ‘의무화’하는 것은 효율성 면에서 여러 잠재적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결론이다. 보고서는 “고정단가 계약이 더 효율적인 경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가연동조항이 강제되면 시장참여자들의 선택이 왜곡되어 비효율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단가연동조항의 부담을 피해갈 수 있는 식으로 계약기간을 단축하거나 다른 거래조건을 왜곡해 이익을 보전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도 제기됐다. 나아가 장기적으로는 원사업자가 단가연동조항의 부담을 피해 수직통합을 한다면, 수급사업자의 일감 자체가 줄어들 가능성도 언급했다.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의 협상력 격차가 현저할 경우에는 납품단가 연동제 의무화가 더 큰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거래 당사자 사이의 협상력 격차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단가연동을 강제할 경우, 원사업자가 위험을 분담해주는 대가로 지나치게 낮은 단가를 요구하는 등 거래조건이 달라질 우려도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단가연동조항은 반드시 누군가 잃어야 하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그러나 의무화되는 순간 누군가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아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짚었다. 특정 계약 형태를 강제하기보다는 근본적으로 협상력 격차를 완화하고 남용 행위를 규율하는 것에 정책적 노력을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취지다. 보고서는 중장기적으로 원자재 가격 변동 위험을 헤지할 수 있는 보험이나 선물 등 금융시장 개발을 권고했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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