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롯데팰리스호텔에서 열린 한국 경제 설명회 모습. 기획재정부 제공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라는 복합 위기를 맞은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외국인들의 시선은 어떨까. 이는 정부가 지난 1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개최한 ‘한국 경제 설명회’에서 쏟아진 외국 투자기관들의 질문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이날 설명회 참석자는 한국 주식과 채권 등에 투자한 외국의 대형 투자은행·자산운용사 임원 20명이다. 이중 ‘ㄱ’ 사모펀드 소속 그룹장은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한국의 무역 흑자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85%”라며 “특히 중간재(최종 제품 생산에 투입하는 재료) 무역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높은 대중 의존도가 향후 구조적 문제가 될 우려는 없나”라고 물었다.
중국의 성장 둔화, 미·중 갈등 등으로 대중국 수출이 타격을 입으면 한국 경제 전반이 휘청일 수 있다는 시각이다. 또 다른 투자자도 “최근 지정학적 리스크(위험)가 고조되는 상황인데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가”라고 질문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84.8%(2021년 기준)에 이르는 만큼 외부 충격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한 투자자는 “최근엔 경제적 효율성보다 국가 안보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미·중 경쟁 구도가 장기화하면 한국의 산업과 무역도 구조적으로 도전을 맞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미국의 ‘ㄴ’ 금융회사 쪽 인사는 “물가가 급등하는 가운데 미국 중앙은행이 정책금리를 계속 인상할 전망인데, 한국 정부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추 부총리에게 던졌다. 한·미 정책금리 역전은 국내 투자금 이탈, 원화가치 약세 등을 초래할 수 있어서다. 현재 한국의 기준금리는 연 3.0%로 미국(3.0∼3.25%)보다 약간 낮다. 그러나 다음달 1∼2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자이언트 스텝’(0.75%포인트 인상)을 밟으면 한·미 금리 격차는 다시 1%포인트로 벌어진다.
다만 대다수 투자자들은 한국의 대외 건전성 자체엔 문제가 없다는 견해를 보였다. ‘ㄷ’ 사모펀드 관계자는 “달러 대비 원화가 하락했지만 엔화 대비 강세이고 유로화와 비슷한 상황”이라며 “원화가 상대적으로 선방했다는 평가도 있다”고 말했다. 환율 급등으로 위기감이 고조되는 국내와 해외 투자자 간 시각차가 있는 셈이다.
‘ㄹ’ 자산운용사의 임원급 인사는 한국 정부의 가계부채 억제 정책을 물으며 “기업 부채의 경우 외환위기 당시인 25년 전에 비해 크게 감소해 현재는 오히려 순현금 보유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가계는 부동산 구매 등으로 빚이 크게 늘었으나 수출 대기업 중심의 기업들은 빚 없는 ‘현금 부자’라는 점을 부각한 것이다.
이날 설명회에서 한 외국인 투자자는 “나는 영국인”이라고 소개하며 “영국 재무부가 한국처럼 정책을 추진했으면 좋겠다”고 농담하기도 했다. 영국 정부는 최근 대규모 감세 추진에 따른 재정 건전성 악화 우려로 국채금리가 급등하는 등 금융시장 불안을 초래한 바 있다.
워싱턴/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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