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 신선대부두에서 수출 컨테이너 화물이 선박에 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은 11.5주마다 그리스 규모의 경제를 창출하는 나라.”
‘브릭스’(중국을 포함한 신흥 경제 5개국)라는 말을 처음 만든 짐 오닐 전 영국 재무부 차관은 지난 2012년 고속 성장하는 중국 경제를 이같이 묘사했다. 그러나 이런 평가는 10년 만에 180도로 달라졌다. 이제는 중국이 세계 경제의 성장이 아닌 침체를 견인하리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대중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도 비상이 걸린 셈이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투자연구소는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 기간인 지난 17일 펴낸 보고서에서 “중국 경제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전 10년 동안 연평균 7.7%로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당히 느린 성장 단계에 접어드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중국 경제의 잠재 성장률(물가 자극 없이 성장할 수 있는 경제의 기초 체력)이 10년 뒤 3%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기관이 중국 경제의 장기 저성장을 점치는 이유는 크게 3가지다. 먼저 중국의 수출이 꺾이고 있다. 보고서는 올해와 내년 중국의 실질 수출 증가율이 연평균 6% 줄어들며 성장률을 1.1%포인트 갉아먹을 것으로 봤다. 코로나 발생 기간 급증한 해외 상품 수요에 힘입어 2020∼2021년 연간 10%씩 불어난 수출이 감소세로 돌아서리라는 것이다.
수출 대신 내수 부양에 나서기도 녹록지 않다. 지방 정부의 대규모 부채와 부동산 거품, 소득 불평등 악화 등이 정부 정책의 발목을 잡고 있어서다. 시진핑 집권 3기에도 성장보다 안정 중시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도 이런 분석에 힘을 보탠다. 중국의 생산 가능 인구 감소, 미국의 첨단 기술 견제로 인한 생산성 성장 둔화는 앞으로 중국의 성장 잠재력을 낮추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블랙록은 “과거 세계 각국이 경기 침체에 직면했을 땐 중국이 낮은 생산 비용으로 값싼 제품을 풍부하게 공급했다”며 “현재 미국, 영국, 유럽에 경기 침체가 다가오고 있지만 이번엔 중국이 다른 나라를 구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발표한 ‘세계 경제 전망’에서 아예 중국 경기 침체를 글로벌 경제의 3대 위협 요인 중 하나로 지목했다. 제로 코로나 정책, 부동산 경기 급락 등으로 세계 2위 경제 대국인 중국 경기가 둔화하면 각국에 우크라이나 전쟁에 버금가는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견해다. 아이엠에프는 지난해 8.1%를 기록한 중국의 실질 성장률이 올해 3.2%에 그치며 반 토막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호주의 싱크탱크 ‘로위연구소’도 올해 3월 내놓은 보고서에서 “중국은 인구 감소, 자본 집약적 성장의 한계, 생산성 성장 둔화 등으로 연간 성장률이 오는 2030년까지 연평균 3%, 2040년까지는 2%로 둔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제는 그동안 ‘중국 특수’를 톡톡히 누린 한국에 중국의 저성장은 절대 남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국의 수출과 성장이 꺾이면 중국 현지 생산 기지로 중간재(최종 제품 생산에 투입하는 재료)를 수출하는 한국의 교역에 미칠 파장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이달 20일까지 한국의 대중국 무역흑자(수출액-수입액)는 27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86%(172억달러) 감소했다. 대중국 수출 감소, 원자재 수입액 증가 등의 여파로 무역 흑자액이 1년 만에 25조원가량 증발한 셈이다. 지난해 대중국 무역흑자 규모는 243억달러로 한국 전체 무역흑자(293억달러)의 83%에 달했다. 한국 정부가 지난 1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개최한 한국 경제 설명회에서 세계 3대 사모펀드 중 하나인 ‘ㄱ’사 임원이 기획재정부 쪽에 “높은 대중 의존도가 향후 한국 경제에 구조적 문제가 될 우려가 없나”라고 물어본 것도 이런 특수성 때문이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시진핑 주석이 지난해 3월 양회에서 밝힌 대로 오는 2035년까지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을 2020년의 2배로 만들려면 연평균 4.73%씩 경제 성장을 해야 하지만, 지금 상황만 보면 달성이 불가능해 보인다”며 “미국의 대중국 봉쇄 강화, 중국 내 독재에 대한 반발, 해외 투자자들의 현지 투자 위축, 정부 부양책의 한계 등으로 중국 성장률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건 공통된 인식”이라고 말했다. 연 팀장은 다만 “최근의 대중 무역수지 악화는 원자재 수입 가격 상승으로 인한 일시적 현상이며 중국에서 베트남 등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지역으로 공급망이 변화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어 한국의 수출 감소세가 급격하게 나타나진 않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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