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와 인스타그램의 ‘먹통’ 사태가 잇달아 발생하면서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탈중앙화를 지향하는 웹3.0이 주목받고 있다. 단 한 곳의 배터리 화재로 플랫폼 전체 서비스가 중단됐다는 점에서, 데이터를 분산 저장해 처리하는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이 향후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웹3.0에 대한 담론을 이해하기 위해선 1990년대 초반부터 이어진 웹1.0, 웹2.0 개념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웹1은 1994~2004년까지 이용된 대부분의 웹사이트 형태를 의미한다. 뉴스나 논문 등 콘텐츠가 웹에 올라오면 일반 사용자는 검색하거나 읽기만 가능했다. 댓글을 다는 등 상호작용이 어려워 일방적인 정보 제공이 이뤄졌다. 웹브라우저로는 넷스케이프, 검색 사이트로는 야후 등이 주로 사용됐다.
웹2는 오라일리 미디어의 데일 도허티 부사장이 닷컴 붕괴 이후 일정한 공통점을 지닌 새로운 모습의 개념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웹1 시대의 수많은 인터넷 기업 중 살아남은 기업들을 가리키는 단어이기도 하다. 웹2는 누구든지 직접 콘텐츠를 만들고 쌍방향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 특징이다. 게시판과 댓글, 지식백과 등이 활발해졌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유튜브, 위키백과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현재 웹 환경은 대부분 웹2에 머물러 있다고 볼 수 있다. 구글과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플랫폼에서 이용자들은 직접 콘텐츠를 만들고 공유한다. 사용자가 생산한 데이터는 플랫폼 기업이 관리하는 중앙 서버에 저장된다. 하지만 이로 인한 대형 플랫폼 집중화, 데이터 독점,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플랫폼 기업들이 사용자들의 콘텐츠와 데이터를 이용해 막대한 돈을 벌면서도 수익을 독점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같은 문제점에 대한 대안으로 웹3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이용자가 읽고 쓰는 것을 넘어 데이터를 소유하고 직접 관리하도록 하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이를 통해 플랫폼이 독점했던 이익을 사용자가 나눠받고 개인정보의 주권을 찾아오자는 것이다. 이더리움 공동 창시자인 개빈 우드가 2014년 블록체인 기반의 탈중앙화한 차세대 인터넷으로 웹3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웹3에서는 사용자의 데이터가 플랫폼 기업의 중앙 서버에 저장되는 게 아니라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분산 저장된다. 사용자가 자신의 신원 데이터를 직접 관리하는 모델을 자기 주권적 신원(SSI)이라고 한다. 따라서 기업이 사용자의 데이터를 독점할 수 없고, 해킹으로 인한 개인 정보 유출도 방지할 수 있다.
웹3의 탈중앙화는 기업에 쏠려 있던 권한도 사용자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 탈중앙화자율조직(DAO)을 구성해 사용자들이 직접 서비스 운영에 참여하고, 논의 내용과 과정을 블록체인에 기록한다. 투명하고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해진다. 참여자는 생태계에 기여한 만큼 보상(토큰)을 받는다. 다만 투표 과정으로 인해 의사결정이 느리고 비효율적인 면이 있다는 단점이 있다.
웹3를 구성하는 핵심인 대체불가능토큰(NFT)은 디지털 파일 소유자와 거래기록을 블록체인에 저장하는 기술이다. 사용자가 생산한 디지털 콘텐츠에 소유권과 희소성을 부여할 수 있게 만든다. 일종의 디지털 소유권 보증서 개념이다. 대체불가능토큰 시장 참여자들은 주로 그림과 영상, 게임 아이템 등 기존 콘텐츠에 고유한 디지털 주소를 부여해 ‘디지털자산’으로 만들어 플랫폼에서 거래한다. 미술 작품의 경우 원작자와 소유권, 거래 이력 등이 명시돼 재판매가 되면 원작자에게 로열티를 지급할 수 있다.
다만 웹3의 개념은 여전히 논쟁적이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가상의 제품과 같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기업가들 사이에서도 극단적인 평가가 나온다. 미국 유명 벤처캐피털인 앤드리슨 호로위츠를 이끌고 있는 마크 앤드리슨은 대표적인 웹3 옹호론자다. 넷스케이프 개발자로도 알려진 그는 웹3를 통해 현재의 중앙집권적인 플랫폼을 분산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테슬라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는 “웹3는 실체가 없는 마케팅 용어에 더 가깝다”고 지적했다. 트위터 창업자인 잭 도시도 “(대중이) 웹3를 소유할 수 없다. 권력을 벤처캐피탈(VC) 회사들로 옮기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지난달 15일 에스케이씨앤씨(SK C&C) 판교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한 화재는 ‘단일 장애 지점’이 플랫폼 전체의 마비로 번질 때 초연결 사회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메타(옛 페이스북)가 운영하는 사회연결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도 지난달 말 8시간 넘게 계정 접속 불가와 차단 등 오류가 발생해 전 세계 사용자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웹에서 사용자가 생산한 데이터가 모두 플랫폼 기업이 관리하는 중앙서버에 저장된 탓이다. 탈중앙화 시스템을 추구하는 웹3가 대란을 막아낼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블록체인 개발사 오버랩스(옛 슈퍼블록)의 김재윤 대표는 8일 <코인데스크코리아>와 통화에서 “지금의 웹2에서 발생하는 서버 셧다운이나 트래픽 과부하 같은 문제들은 기본적으로 블록체인 시스템에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분산 시스템인 블록체인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먹통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웹2에서도 서버 분산과 백업은 가능하다. 김 대표는 “웹3는 프로토콜을 유지하는 노드로 불리는 컴퓨터들로 운영돼 ‘단일 장애지점’이 발생하기 어렵기 때문에 안정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며 “특히 금융시스템처럼 보안이 중요한 경우에는 블록체인 위에서 구현하는 게 더 적합하다”고 짚었다.
백신패스 앱 개발업체 블록체인랩스는 지난 7일 웹3 메신저 블록챗을 앱스토어에 출시했다. 회사는 블록챗이 중앙 서버가 없어 화재나 해킹 위험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소개했다. 박종훈 블록체인랩스 공동대표는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 등을 봤을 때 웹2 시대 메신저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데이터 주권을 회복하려면 개인 정보를 제출할 필요가 없고 개인 기기에만 대화 내용이 저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웹3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안전성 측면에서 탈중앙화의 방향은 맞지만, 현재로선 인프라와 기술이 못 미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블록체인의 데이터 용량이나 속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 발전이 이뤄져 가상자산(암호화폐)을 넘어 정보기술(IT) 분야 전반으로 인프라가 확산돼야 가능하다고 본다. 블록체인의 탈중앙화가 현실로 완결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것이란 얘기다.
현재 초기단계인 웹3 서비스가 대부분 개발자 중심으로 만들어져 일반인이 사용하기가 복잡하고 진입장벽이 높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사용자가 디지털 지갑 등을 만들고 연동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웹3는 새로운 미래형 웹서비스라는 긍정적인 시선과 함께 ‘블록체인 트릴레마’라는 난제도 안고 있다. 블록체인 트릴레마란 확장성(속도)과 탈중앙화, 보안성이라는 세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블록체인은 만들기 어렵다는 뜻이다. 김재윤 대표는 “블록체인 트릴레마 문제도 서비스 특징에 맞춘 메인넷들을 각각 개발해 사용하는 걸로 해소해야 한다”며 “서로 다른 메인넷을 연결해주는 인터체인이나 크로스체인 기술을 적용해 서비스 용도에 맞는 여러 체인을 옮겨가며 써야 상용화가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김제이 코인데스크 코리아 기자 jey@coindesk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