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비싼 포도로 불리는 ‘루비로망’. 신세계백화점 제공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포도 루비로망(루비로만) 묘목을 도둑질해갔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포도’ 루비로망을 두고 때 아닌 ‘품종 유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루비로망은 일본에서 개발된 포도 품종으로, 현지 경매에선 한송이에 최고 1400만원 넘는 가격에 낙찰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루비로망을 재배·판매하는 것은 불법일까? 답은 “그렇지 않다”다.
9일 국립종자원 등의 말을 종합하면, 현재 국내에서 루비로망을 재배·판매하는 것은 ‘법적으론’ 문제가 없다. 일본 쪽은 루비로망 묘목이 한국에 무단 유출됐다고 주장하지만, 국립종자원은 “일본 쪽이 한국에 ‘품종보호등록’을 하지 않은 채 보호 등록 가능 기간(6년)이 지나버렸다. 법적으로는 누구나 재배·판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제식물신품종보호연맹(UPOV)’ 조약에 따르면, 새 품종 개발자가 품종 보호를 받으려면 나라별로 품종보호 등록을 해야 한다. 품종보호 대상으로 등록된 품종은 무단 재배가 금지된다. 등록 기간은 해당 종묘(묘목)가 농가에 양도(상업적 이용)된 날로부터 6년까지다. 그 기간 안에 품종보호 등록을 해야 배타적 권리를 인정받아 재배자한테 품종 로열티를 받을 수 있다.
일본 이시카와현은 1995년부터 14년 걸친 연구 끝에 루비로망 포도 품종을 개발했고, 2007년부터 농가에 묘목을 양도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종자원 관계자는 <한겨레>에 “국내에선 2020년 11월 처음 루비로망 생산·판매 신고가 이뤄졌는데, 이 때는 이미 품종보호 등록 기간이 끝난 시점이라 신고를 받아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며 “국내 개발 품종의 품종보호 등록 가능 기간은 1년, 국외 품종은 6년”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루비로망 생산·판매 신고를 한 국내 농가는 27곳이다.
국립종자원 쪽은 때 아닌 루비로망 품종 유출 논란이 벌어진 것에 대해 “자국 품종 유출 빈도가 늘자, 이에 대한 권리를 강화하기 위해 일본이 들고나온 이슈”라고 추측했다. 현재 국내에서 재배하는 루비로망 묘목은 대부분 중국에서 들여온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루비로망 재배 농가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충북에서 루비로망을 재배 중인 이아무개씨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졸지에 일본에서 묘목을 도둑질한 사람으로 취급받고 있어 어이가 없다”며 “국가기관인 국립종자원에 합법적으로 생산·판매 신고를 했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씨는 2018년 중국을 통해 루비로망 묘목을 들여왔으며, 2021년부터 본격 생산해 백화점 등에 납품 중이다. 이씨는 이어 “만일 보호 기간(6년)이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묘목이 무단 유출됐다면 일본이 관리를 못 한 것이고, 중국에 항의해야 할 문제”라며 “그런데 일본이 한국을 걸고넘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도 이런 문제를 의식해, 한국을 비롯해 각국에서 ‘상표 출원’을 서두르고 있다. 상표 등록이 이뤄지면, 한국 재배 농가가 ‘루비로망’ 상표를 쓰려면 상표 사용료(로열티)를 지불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재배나 다른 상표로 판매하는 것은 문제없다. 특허심판원은 지난 8월 전남의 한 사업자가 2019년 9월 등록해 보유하고 있던 ‘루비로망’ 상표권을 무효로 했는데, 이는 일본이 아닌 국내 특정인이 루비로망에 대한 상표권을 독점적으로 갖는 것에 불만을 가진 다른 종묘 회사가 심판을 청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