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가 펴낸 ‘글로벌 임금보고서 2022-2023’ 표지.
올해 내내 이어진 물가·금리 충격의 누적 영향이 본격화하면서 내년 실물경제 하강과 실질임금 후퇴 가속화가 닥쳐올 전망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국가마다 높은 인플레이션 지속으로 저소득 취약계층의 ‘생계비 위기’ 시대가 도래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가 내년 경제정책방향에 저소득층의 생계비 압력 완화에 대한 종합 대응정책을 서둘러 담아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제노동기구는 지난 1일 펴낸 세계임금보고서(2022~2023)에서 글로벌 인플레이션 상황을 ‘명목임금 성장의 정체로 올해 내내 급등한 물가를 상쇄하지 못하고 실질임금이 크게 하락하면서, 저소득 노동자 가계의 생존을 위협하는 생계비 위기가 닥쳐온’ 시대라고 규정했다.
고물가 현상은 우리나라 같은 선진 경제국일수록 노동자 실질임금을 대폭 떨어뜨리고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물가상승이 본격화한 올해 상반기 주요 20개국(G20)의 실질 월임금 증감율은 한국·미국·독일·영국 등을 포함한 9개 선진국의 경우 평균 -2.2%(전년 동기 대비)로 집계됐다. 반면 중국·인도·멕시코·튀르키예 등 9개 신흥국은 전반적인 물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실질임금이 평균 0.8% 올랐다. 주요 20개국 평균은 -0.9%로 나타났다. 이 기구는 “올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글로벌 임금성장이 마이너스를 보이는 해로 기록될 것”이라며 “저임금 노동가구의 생계비 위기는 2023년말까지 계속 글로벌 임금소득 동향을 지배하는 현상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기구는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2년간 저임금·불안정 노동자일수록 일자리를 잃고 노동시장에서 이미 탈락했거나 소득이 급감한 반면, 고임금·정규직 노동자는 고용을 견고하게 유지했다는 점(이른바 ‘구성의 효과’)을 감안하면 인플레 시대에 글로벌 실질임금과 구매력은 통계로 드러난 숫자보다 더 악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시아 각국의 내년 연간 물가 전망치(경제협력개발기구·아시아개발은행, 12월 기준)를 보면 한국(3.2%)이 중국·일본·홍콩·대만(2.0~2.4%)보다 훨씬 높다. 무엇보다 한국은행 전망에 따르면, 취업자 수 증가폭(전년 동기 대비)이 상반기는 올해 94만명에서 내년 8만명으로, 하반기도 올해 70만명에서 내년 9만명으로 급감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 상반기에 경기가 후퇴하고 인플레이션 비용이 경제영역 전반에 걸쳐 더욱 커지면서 저임금 계층에 고통이 집중될 공산이 커졌다.
국제노동기구는 “인플레이션에 대응하는 통화정책을 지속하더라도 저소득층의 생계비 압력을 완화하는 재정정책을 당장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기획재정부는 오는 21일 내년 연간 경제 성장률 전망치 등과 함께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을 제시할 예정이다.
조계완 선임기자
kye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