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13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참여연대 등 사회종교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화물연대 탄압 중단 및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공정거래위원회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를 조사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화물연대를 사업자단체로 예단하는 발언을 일삼다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고발까지 당한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고발 여부를 결정하는 전원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공정위는 18일 보도참고자료를 통해 “화물연대의 고의적인 현장진입 저지를 통한 조사방해 행위에 대해 화물연대 본부를 검찰에 고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공정위는 화물연대를 노동조합이 아닌 ‘사업자단체’로 규정하고 총파업 과정에 공정거래법(부당공동행위 등) 위반이 있었는지 살피겠다며 조사에 나선 바 있다. 당시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적용 차량 확대’를 요구하며 총파업을 진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2일·5일·6일 세 차례에 걸쳐 화물연대 본부에 대한 현장조사를 시도했으나 화물연대 쪽 거부로 사무실에 진입하지 못했다.
공정위는 이러한 고의적인 현장진입 저지가 조직적 차원에서 결정·실행되었다고 보고 화물연대 본부를 검찰에 고발했다. 공정거래법상 조사방해 행위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공정위 전원회의가 조사방해 행위만 단독으로 다룬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정위는 화물연대를 노조로 볼 수 없으며 2명 이상의 사업자가 모인 사업자단체면 조사 대상이 된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화물연대는 노조법상 설립신고증을 교부받은 바 없어 노조법상 노조로 인정하기 어렵고, 다양한 형태의 개인사업자로 구성되어 있어 일률적으로 노조법상 근로자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지난 2018년 “노조법상 근로자 여부는 ‘노무제공관계의 실질’에 비추어 노동삼권을 보장할 필요성이 있는지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노조 설립신고증 교부 등 법적 요건이 아니라 화물노동자가 화주나 운송업체와 얼마나 불평등한 관계에 있으며 교섭력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살펴야 한다는 의미다. 주요 선진국들은 ‘1인 자영노동자’에게도 노동삼권을 보장해주는 분위기다. 지난해 9월 유럽연합은 “노동자에 버금가는 상황에 놓여있거나 협상력이 약한 1인 자영노동자에게는 경쟁법을 적용하지 말라”는 내용의 권고문도 발표한 바 있다.
결국 이번 고발 결정 여부의 핵심은 ‘화물연대의 노동삼권을 인정할 것이냐’에 달렸지만, 공정위는 중요한 쟁점을 교묘히 비껴가고 있다. 공정위는 화물연대의 거부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본안’(부당공동행위 등)은 아직 다루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우선 화물연대의 조사방해 행위만 따로 떼어내 검찰 고발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화물연대의 사업자 단체 여부는 본안에서 본격적으로 판단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문재호 공정위 대변인은 “이번 건은 화물연대의 조사방해에 대한 것이고 본안이 아니기 때문에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지와 조사가 거부됐는지만 판단했다”며 “조사가 진행되어 본안을 다루게 될 때 화물연대의 사업자단체 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이 내려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화물연대는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삼권의 주체인 화물노동자와 화물연대를 ‘공정위 조사방해죄’로 고발하는 것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화물연대는 이날 의견서를 통해 “공정위의 조사 개시는 노동삼권이 보장되는 화물연대에 대한 정부의 파업 파괴 수단의 일환이었고, 화물연대는 공정위 조사 대상이 아니다”라며 “공정위 조사 자체가 위법·부당하므로 조사방해죄는 성립할 수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2일 공정위가 전달한 조사서에 혐의사실이 기재되어 있지 않은 점, 같은 달 6일 조사 목적에 대한 화물연대의 질의에 대해 공정위가 답변하지 않은 점 등도 문제 삼았다.
한편 화물연대 고발 조처를 결정하기 위한 지난 16일 전원회의에 한기정 위원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공정위는 “복지관 방문 일정이 잡혀있어 한 위원장이 전원회의에 불참했다”고 설명했지만 절차적 중립성에 대한 논란이 거듭 제기되자 한 위원장이 부담을 느낀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앞서 한 위원장은 화물연대 조사 과정에서 이례적인 브리핑을 열고 화물연대의 사업자단체 여부를 예단하는 식의 발언을 했다가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고발을 당한 바 있다. 이후 한 위원장이 ‘조사·심판 기능 분리’ 원칙을 깨고 공정위 사무처에 화물연대 조사를 직접 지시한 사실도 드러나 ‘표적 조사’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