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 하다 이젠 살인사건까지…. 점주인 저는 물론 알바생의 안전을 위해 호신용품이라도 구비해놔야 할 것 같아서 오늘 인터넷으로 ‘목검’ 하나 주문했습니다. 정말 불안해서 살 수가 없네요.”
최근 편의점을 둘러싼 각종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자 한 편의점 점주는 이렇게 말했다. 인천 한 편의점에서 강도살인 사건이 발생하자 편의점주와 알바생들 사이에서는 안전에 관한 우려가 터져 나오고 있다.
10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편의점 강도살인 사건이 발생한 뒤 안전을 위한 자구책을 마련하는 점주들이 크게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점주들은 카운터에 망치·몽둥이·호신용 스프레이 등을 비치하고 알바생에게는 “사건이 일어나면 직접 대항하지 말라”고 교육하고 나섰다.
앞서 지난 8일 인천 계양구 한 편의점에서는 검은색 옷을 위아래로 입은 30대 남성이 카운터에 있던 점주를 구석으로 불러내 흉기로 찔러 살해한 뒤 돈을 챙겨 달아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 용의자는 강도 전과가 있어 전자발찌까지 착용하고 있었으며, 범행 뒤 이를 끊고 도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15일 비닐봉투 무상 제공 문제로 다툼이 일자 앙심을 품은 한 40대 남성이 차를 몰고 편의점으로 돌진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갈무리
한 여성 편의점 점주는 <한겨레>에 “경찰이 용의자 사진을 공개하고 제보를 요청하고 난 뒤, 검은색 상·하의를 입은 남성이 점포 근처에 얼씬거리기만 해도 몸이 굳어진다”며 “알바생들에겐 강도가 들 경우, 대항할 생각 말고 원하는 대로 해주고 난 뒤 경찰에 신고하라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편의점주와 알바생이 모이는 커뮤니티에는 불안감을 호소하는 글과 호신용품에 관한 의견을 구하는 글들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담배 진열장에 비치해 놓은 망치 사진을 올린 점주, 카운터에 숨겨 둔 도끼 사진을 올린 점주, 포스기 옆에 놓아둔 호신용 스프레이 사진을 올린 점주도 있었다.
현재 편의점 계산대에 112호출 비상벨이 있지만, 이들은 경찰이 출동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위급한 상황에서는 대응이 늦을 수밖에 없다고 호소한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편의점 알바생은 “주취자나 진상 손님 때문에 온갖 일을 당해봤지만, 편의점 알바를 한 지 2년이 넘도록 비상벨을 사용해 본 적은 없다”며 “경찰이 편의점만 챙기는 것도 아닌데, 급박한 상황에서 아무리 빨리 출동한다 한들 사건을 막기 어려울 것 같아 불안하다”고 말했다.
인천 편의점 살인사건 발생 후 계산대에 호신용품을 구비하는 편의점주들이 늘고 있다. 한 편의점주는 자신의 점포에 비치된 망치 사진을 공유했다. 커뮤니티 갈무리
점주와 알바생이 공포감을 호소하고 나선 것은 최근 편의점에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어서다. 코로나19 대유행 때는 알바생이 “마스크를 써달라”고 요청했다가 폭행을 당하는가 하면, ‘촉법소년’이라고 주장하는 중학생이 난동을 부리는 일도 있었다. 물건을 구매했는데 비닐봉투를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차를 몰고 편의점으로 돌진한 사건까지 발생했다.
인천 편의점 살인사건 발생 후 계산대에 호신용품을 구비하는 편의점주들이 늘고 있다. 한 편의점주는 자신의 점포에 비치된 망치 사진을 공유했다. 커뮤니티 갈무리
편의점을 둘러싼 사건·사고 증가는 통계로도 드러난다. 경찰청 집계를 보면, 편의점 범죄 건수는 2018년 1만3548건, 2019년 1만4355건, 2020년 1만4697건, 2021년엔 1만5489건으로 증가 추세다. 2021년 기준으로 가장 많은 범죄 유형은 절도(6143건)였지만, 상해·폭행 등 폭력범죄도 2071건이나 됐다.
한 일선 경찰서 관계자는 “편의점은 야간에 알바생 1인이 근무하는데다 누구나 제약 없이 들어올 수 있고, 공간도 비좁아 범죄가 발생하기 쉬운 구조”라며 “시시티브이가 설치돼 있고, 파출소 등으로 연결되는 112비상벨도 있지만 범죄 자체를 예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인천 편의점 살인사건 발생 후 계산대에 호신용품을 구비하는 편의점주들이 늘고 있다. 한 편의점주는 립스틱처럼 생긴 작은 호신용 스프레이를 항상 구비해두고 있다며 사진을 올렸다. 커뮤니티 갈무리
업계에서는 편의점의 영업 영역이 계속 확대되는 점을 고려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편의점이 단순히 상품을 판매하던 옛날과 달리 은행업무, 중고거래, 물품대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생활 플랫폼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 관계자는 “편의점은 여성·아동 지킴이집으로 피난처 역할은 물론 최근에는 심장충격기를 비치해 응급 의료 대비처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며 “하지만 담배 광고 금지·제한 조처인 ‘편의점 외벽 불투명 시트지’가 근무자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문제 제기에도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등 점주와 알바생의 안전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너무나 부족하다”고 짚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