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석 불량 사외이사 다시 뽑히고
계열사 상근임원 가마 추천되거
다른 기관투자가들 반대율 0.33%
계열사 상근임원 가마 추천되거
다른 기관투자가들 반대율 0.33%
경제 프리즘/‘큰 손’ 국민연금이 겪어 본 ‘요지경’ 주총
국민연금은 국내 증시에서 가장 ‘큰손’이다. 운용자금 164조원 중 20조원을 국내 500여 회사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국민들이 한 푼 두 푼 모은 연금을 잘 굴려서 최대 수익을 올리는 게 국민연금의 존재 이유다. 그러려면 주식투자를 한 기업이 좋은 경영실적을 올리도록 감시와 견제 구실을 잘 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올해 정기주총 시즌을 맞아 최근 한 달 새 64개 기업의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했다. 이 중 8개 회사에서 1건 이상의 의안에 반대표를 던져, 4.15%의 반대율을 기록했다. 전체 기관투자가들의 주총 안건 반대율이 0.33%에 불과한 현실에 비하면 한결 나은 수준이다. 하지만 거수기나 고무도장에 불과하다는 오명을 완전히 벗기에는 아직 불충분하다. 그나마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많이 던질 수 있었던 것은 지난해 말 처음으로 의결권 행사지침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찬성률은 97.5%에 달했다.
그런 점에서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진 것은 최소한의 의무행사 차원으로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출석률이 불량한 사외이사를 다시 뽑는 데 반대한 것이다. 경영감시를 해야 하는 사외이사가 이사회에 제대로 출석하지 않는 것은 당연히 결격사유다. 하지만 이런 불량 사외이사들을 다시 뽑으려는 ‘이상한’ 일이 한국기업의 주총장에선 버젓이 벌어진다. 세이브존아이앤씨는 지난해 이사회를 세 번에 두 번꼴로 빠진 김의식 사외이사를 다시 추천했다. 태광산업과 케이시시도 절반 이상 이사회에 불참한 이태희, 김재준 사외이사를 다시 뽑겠다고 나섰다. 태평양이 재추천한 사외이사 후보 3명도 모두 이사회 출석률이 30%대에 불과했다.
계열사 상근임원을 감사로 추천하는 ‘기괴한’ 일도 벌어졌다. 르네코는 계열사인 동문건설의 상근임원인 김연명씨를, 영풍은 계열사 코리아써키트의 상근임원인 김진율씨를 각각 감사로 추천했다. 고려아연은 관계사인 서린상사의 상근임원 한범우씨를 추천했다. 경영진을 감시해야 할 감사를 계열사 임원으로 임명하겠다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꼴이다. 경영성과가 좋지 않았음에도 이사와 감사의 보수 한도를 높이겠다는 ‘민망한’ 기업도 있었다. 포항강판은 이사·감사의 연간 보수 한도를 각각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2억원에서 4억원으로 늘리겠다고 안건을 올렸다.
그러나 대한민국 최대 ‘큰손’의 반대표 행사는 모두 패배로 끝났다. 사외이사·감사들은 모두 예정대로 선임됐고 이사·감사의 보수는 늘어났다. 국민연금 외의 다른 모든 기관투자자들이 여전히 주총장의 거수기 구실에 머문 탓이다. 물론 원초적 책임은 ‘엉터리’ 안건을 제출한 회사의 지배주주와 경영진들에게 있다. 전경련 등 재계는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들이 외국 투기자본의 경영권 위협에 맞서 방어벽 소임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기관이 지배주주와 경영진의 전횡에 반대표를 던지는 것엔 반대한다. 이중적 태도다. 대한민국 최대 ‘큰손’의 눈으로 본 2006년 대한민국 주총 풍경은 아직 밝지 않았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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