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스캔들로 유동성 위기에 몰린 스위스 대형은행 크레디스위. AFP 연합뉴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에 이어 세계적인 투자은행인 크레디스위스(크레디트스위스·CS)가 유동성 위기에 몰리면서 은행시스템 취약성 위기가 글로벌 시장에 팽배해지고 있다. 스위스 중앙은행은 즉각 최대 500억스위스프랑(약 70조원) 지원에 나서면서 불안감 확산을 차단하고 나섰다. 크레디스위스는 실리콘밸리은행과 다르게 아직 재무건전성 등이 양호한 상황이라 시장의 과도한 불안감을 얼마나 누그러뜨리냐가 사태 해결의 핵심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크레디스위스는 세계에서 17번째로 큰 대형 투자은행이자 스위스에서 두 번째로 큰 은행이다. 지난해 73억스위스프랑(78억5천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2년 연속 대규모 손실을 기록했다. 그런데 이 은행의 최대주주(지분율 9.9%)인 사우디국립은행의 아마르 알 쿠다이리 회장이 15일(현지시각) <블룸버그>와 회견에서 “크레디스위스에 대한 추가 유동성 지원 계획이 없다”고 발언하면서 유동성 위기 공포가 부상했다. 그는 보유 지분을 10% 이상 높이면 규제 문제 등이 발생한다면서 추가 유동성 지원 계획이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사우디국립은행이 지분을 10% 이상 확보시 각종 규제가 강화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예상 가능한 답변이었지만, 이미 불안심리가 커진 시장에서는 이를 위기 신호로 받아들였다. 크레디스위스의 5년 만기 신용부도스왑(CDS) 프리미엄은 이날 975bp(1bp=0.01%포인트)로 전일 대비 426bp 급상승했고, 1년 만기 신용부도스왑 프리미엄도 무려 전일대비 2902bp 상승한 3701bp까지 넘나들면서 부도 우려를 키웠다. 통상 신용부도스왑 프리미엄이 1000bp를 넘어서면 시장에서는 사실상 부도 상태라고 평가한다.
스위스 중앙은행인 스위스 국립은행(SNB)과 금융감독청은 공동성명을 내면서 곧바로 지원에 나섰다. 크레디스위스는 스위스 중앙은행으로부터 최대 500억스위스프랑(약 70조원)을 차입하기로 했다.
크레디스위스는 다행히 현재로서는 건전성이 양호하며, 단기간에 파산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 은행의 유동성 상황을 나타내는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은 지난해 말 144%에서 지난 14일 150%로 오히려 개선된 상황이다. 바젤3 규제가 요구하는 100%를 크게 웃돈다. 보통주자본비율(CET1)도 지난해 말 14.1%로 규제 기준(4.5%)를 넉넉하게 상회한다. 스위스 중앙은행이 “크레디트 스위스는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은행’에 부과되는 자본·유동성 요건을 충족하고 있다”고 강조한 이유다.
크레디스위스를 둘러싼 불안은 다소 과도한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 지역은행이 잇달아 파산하자 경계감이 커진 것이다. 임재균 케이비(KB)증권 연구원은 이날 보고서에서 “크레디스위스의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유동성커버리지비율, 보통주자본비율, 중장기유동성비율 등이 안정적이기 때문에 실리콘밸리은행처럼 파산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번 변동성 위기는 글로벌 은행 시스템에 대한 우려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크레디스위스는 시장의 과도한 불안을 누그러뜨리는 것이 향후 핵심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크레디스위스의 유동성 위기가 아직 위험한 수준은 아니라고 보면서도 혹시 발생할 각종 장외파생상품 거래(계약·인수·보유 등)의 대규모 손실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잇단 은행 위기로 미국 연방준비제도와 유럽중앙은행(ECB)의 고민도 깊어질 전망이다. 실리콘밸리은행 사태로 연준이 오는 21∼22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정책금리를 동결할 수도 있다는 예상까지 나오고 있는 가운데 유럽중앙은행도 16일 정책금리 결정 회의를 연다.
조계완 선임기자
kyewan@hani.co.kr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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