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에 있는 실리콘밸리은행 점포. UPI 연합뉴스
이번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로 국내에서 비우량 채권과 부동산 금융에 대한 투자심리가 더욱 위축될 공산이 커진 가운데, 국내 저축은행의 경우 5천만원 초과 거액 예금인출 및 시중은행권과의 금리 격차 축소에 따른 수신 이탈 우려가 나온다. 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와 보유 유가증권의 평가손실, 자산 대비 단기화된 부채 구조 등을 고려할 때 저축은행의 유동성 지표가 단기간에 악화될 가능성이 내재돼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영업중인 저축은행은 총 79개 업체다. 국내 저축은행이 수익성을 보강하기 위해 매입한 유가증권 규모는 2022년 3분기에 5조5천억원에 달했다. 2020년(3조1천억원)에 비해 77.8% 증가해, 전체 자산 증가율(48.4%)을 크게 웃돈다. 보유 채권뿐 아니라 최근 주식시장 부진에 따라 유가증권(채권, 주식) 전반의 가격 하락 및 평가손실액도 저축은행의 잠재 위험으로 자리잡고 있다. 실리콘밸리은행 사태에서 보았듯이 긴급 유동성 조달을 위한 보유 국채 매도 과정에서 거액의 평가손실 반영이 뱅크런으로 이어졌다.
국내 저축은행에서 2018년 이후 급증해온 5천만원 초과 예금에 대한 대량 인출 현상이 나타날 우려도 제기된다. 지난해 3분기 기준 국내 저축은행에서 5천만원을 초과하는 예금규모는 총 32조5천억원으로 저축은행 전체예금의 27.4%를 차지한다.
신한투자증권은 15일 “거액 예금은 예금보호대상에서 제외되는터라 개별 저축은행이나 저축은행 전체 업권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면 예금 이탈 가능성이 높고, 저축은행 유동성 지표의 저하가 극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며 “더욱이 이번 실리콘밸리은행 사례에서 보듯 모바일(인터넷) 뱅킹 시스템에 따라 공포감이 번지면 순식간에 뱅크런이 발생해 저축은행으로서는 유동성 보강에 대응할 시간을 확보할 수 없게 된다”고 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2월에 펴낸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저축은행에서의 수신 이탈 경계를 이미 지적한 바 있다. 수신 금리 인상으로 시중은행권 정기예금이 급증한 상황에서, 지난해 9월에는 일시적으로 저축은행의 정기예금 금리(1년, 3.77%)가 1998년 6월 이후 처음으로 시중은행 정기예금 금리(3.84%)를 밑돌기도 했다. 메리츠증권도 이날 “예금의 급격한 이탈 상황에서는 그 어떤 금융회사도 보유 채권 매각과 보유 자산가치 훼손(평가액의 손실 확정), 이에 따른 파산·폐쇄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했다.
저축은행의 예수금(부채)은 주로 단기로, 반면에 대출금(자산)은 주로 장기로 구성돼 있는 ‘기간 미스매치’ 구조도 우려를 낳는 대목이다. 국내 저축은행 예수금 중에 1년 이내에 만기 도래하는 규모는 90조7천억원으로 전체 예금규모(118조7천억원)의 76.4%에 달한다. 반면 대출은 1년 이내 상환만기가 도래(원금 회수)하는 금액이 54조9천억원으로 전체 대출의 48.9%다. 1년 이내에 도래하는 예금을 내주기 위해 35조8천억원의 추가 재원을 다른 자산의 매각이나 추가 대출 유입 등을 통해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6개월 이내에 만기가 도래하는 규모로도 그 비중이 예금에서는 41.4%, 대출에서는 34.1%다. 전체 자산 및 부채로 넓혀보더라도, 1년 이내 만기 도래하는 부채가 자산보다 25조1천억원가량 더 많다. 신한투자증권은 “자산 대비 부채의 만기 구조가 단기적으로 이루어져 있어 위기 상황에서는 이런 차이가 불안 요소로 등장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는 여신금액이 거액이라는 특성상 뇌관이 일단 터지면 저축은행 건전성 지표를 불가피하게 급락시킬 공산이 크다. 부동산 경기 호황에 따라 저축은행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 익스포저(대출잔액)는 지난해 3분기 현재 10조6천억원으로 2020년말 대비 3조7천억원가량 증가했다.
현재 국내 저축은행의 유동성 비율(지난해 3분기 평균 135.3%) 지표는 양호한 편이지만,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다. 한국신용평가의 저축은행 평가에 따르면 2년 평균 유동성 비율이 130% 이상이면 A급, 100%이상 BBB급, 90%이상이면 BB급을 부여한다. 유동성 비율 하위 5개사도 대체로 100%를 살짝 웃돈다. 하지만 가장 낮은 ㄱ사는 92.6%에 그친다.
신한투자증권은 “국내 저축은행 유동성 비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어 우려스럽다”며 “실리콘밸리은행 파산에서 확인했듯이 과거와 현재 지표가 건전하다고 해서 1~2년간 안심할 수 있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2011년 저축은행 연쇄 파산 때도 부산저축은행의 당시 유동성 비율은 109%였다. 급격한 예금 인출은 양호한 과거 지표에도 불구하고 저축은행을 부실로 이끌수 있다”고 했다.
조계완 선임기자
kye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