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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KT “정상화까지 5개월 예상”…협력업체 “다 죽으라는 거네”

등록 2023-04-03 06:00수정 2023-04-03 12:33

“4개월 참았는데, 5개월 더 버티라고?”
KT ‘경영 공백’에 협력업체들 ‘아우성’
“투자·물량 발주 중단…유지보수로 연명
서울 KT 광화문 사옥으로 관계자들이 출입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KT 광화문 사옥으로 관계자들이 출입하고 있다. 연합뉴스

“물량 발주 자체를 안 한다. 작년에 케이티 상대로 30억원가량 매출 올렸는데, 올해 들어서는 3월까지 1억원도 안 된다. 직원들 월급은 꼬박꼬박 나가는데…”(이동통신 기지국 자재 납품업체 대표)

“신규 물량 발주 없이 기존 설비 유지보수만 하고 있다. 기다리라고만 한다.”(이동통신 중계기 전문 공사업체 대표)

“올해 초 대규모 추가 물량 발주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계약 체결을 위한 논의가) 언제 재개될지 모르겠다.”(케이티 비통신 분야 협력사 관계자)

케이티(KT)가 지난해 12월부터 차기 대표이사(CEO) 후보를 정했다가 백지화하기를 3번이나 반복하며 ‘경영 공백’ 사태를 이어가는 사이, 케이티 협력업체들이 고사할 지경이라고 아우성이다. 투자 결정과 신규 물량 발주가 사실상 멈춘 탓이다. 끝내 차기 대표이사를 선임하지 못하고 이사회까지 와해된 상태에서, 케이티가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하면서 회사 정상화 기한을 ‘5개월 이상’으로 예상하자 더욱 낙담하는 모습이다.

이동통신 중계기 설치 및 유지보수를 전문으로 하는 통신공사업체 대표는 2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12월 구현모 대표 연임 논란이 일 때부터 사실상 신규 공사 물량 발주가 멈췄다. 요즘은 유지보수만 하고 있다. 일감이 없어 직원들을 놀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다른 통신공사 업체 대표는 “케이티 이동통신 기지국·설비·중계기 공사업체 등만도 전국적으로 수백곳에 이르고, 대부분 영세하다. 대표이사 공백 사태가 이어지며 인사조차 미뤄지다 보니 아무도 안 움직인다. 투자나 물량 발주 요청을 하면, 기다리라고만 한다”고 밝혔다.

이미 벼랑 끝으로 몰렸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한 기지국 자재 납품업체 대표는 “케이티는 300억원 이상 투자를 결정하거나 집행할 때는 대표이사 결재를 받게 돼 있다. 차기 대표이사 선임 논란이 일며 인사가 미뤄지지 시작한 지난해 12월부터 투자 결정과 물량 발주가 사실상 올스톱됐다. 통신 자재 납품업체와 통신공사 업체들 모두 고사 지경”이라고 말했다.

케이티는 구현모 전 대표 취임 이후 ‘디지코’(탈통신) 전략에 속도를 내왔다. 그만큼 신사업 분야와 협력업체들이 늘었다는 뜻인데, 대표이사 공백 사태로 이 협력업체들과의 사업 추진이 불투명해졌다. 한 비통신 분야 협력사 관계자는 “이제 막 시범 물량 공급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대규모 발주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추가 계약 체결이 기약 없이 늦어질까 걱정”이라며 “혹시 차기 대표이사 후보로 누가 거론되고 있는지 들은 것 있느냐”고 물었다.

케이티가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하며 새 이사회 구성과 차기 대표이사 선임 등 회사 정상화까지 5개월가량 걸릴 것으로 예상하자, 협력업체들은 망연자실해 하는 모습이다. 다른 공사업체 대표는 “누가 대표이사가 되건 하루라도 빨리 투자와 물량 발주가 회복되기 만을 바랄 뿐이다. 이미 4개월을 허송세월했는데 5개월 뒤나 가능하다고 하면, 올 한해 사업을 포기하라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협력업체 사정을 감안해서라도 경영 정상화 일정을 앞당겨야 한다는 지적이 케이티 내부에서도 나온다. 한 관계자는 “비상경영 회의에서 정상화 일정을 5~6개월로 예상하고, 차기 대표이사 취임 때까지 임직원 인사도 당장 필요한 곳을 빼고는 미루기로 했다고 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아무도 일을 안 한다. 협력업체들이 힘들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케이티 경쟁력도 후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영 정상화 일정을 앞당길 수 있는 방안도 제시된다. 케이티 관계자는 <한겨레>에 “상법에 따르면, 이사의 원수(의결 정족 수)가 결(부족)할 경우에는 상법 제386조 제1항이 적용돼, 임기만료 또는 사임한 이사가 새로 선임된 이사가 취임할 때까지 이사의 권리와 의무를 갖게 돼 있다. 회사 정관에 따라 4명이면 이사의 원수가 충족되는 만큼, 사퇴한 기존 사외이사들로 서둘러 새 사외이사와 차기 대표이사 후보를 정해 경영부터 정상화한 뒤 새 이사회를 통해 지배구조 개선 방안 등을 마련해도 된다”고 말했다.

앞서 케이티는 지난 3월28일 “현 위기 상황을 조기에 정상 경영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케이티는 대표이사 직무대행과 주요 경영진들로 구성된 비상경영위원회를 신설해 집단 의사결정 방식으로 전사 경영·사업 현안을 해결하고, 비상경영위원회 산하에 ‘성장지속 티에프(TF)’와 ‘새 지배구조(New Governance) 구축 티에프’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케이티는 “성장지속 티에프는 고객서비스·마케팅·네트워크 등 사업 현안을 논의하고,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뉴 거버넌스 티에프는 대표이사·사외이사 선임 절차와 이사회 역할 등 지배구조 전반에 대한 개선을 추진한다”며 “케이티 이사회는 뉴 거버넌스 구축 티에프의 개선안을 바탕으로 사외이사 선임을 추진하고, 신규 선임된 사외이사들이 중심이 되어 변경된 정관과 관련 규정에 따라 대표이사 선임 절차를 추진하기로 했다. 국내 및 미국 상장기업인 점을 감안하면 지배구조 개선 작업과 2차례 임시 주주총회 개최를 통한 사외이사 및 대표이사 선임 절차에 약 5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된다”고 밝혔다.

케이티가 경영 정상화 기간을 5개월 가량으로 길게 잡은 것을 두고, 기존 경영진 중심의 ‘카르텔’을 유지하기 위한 꼼수란 지적도 나온다. 정부와 정치권이 케이티 차기 대표이사와 사외이사 선임에 개입하기 어려운 상황이 오는 총선 직전까지 시간을 벌려고 한다는 것이다. 케이티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전직 고위 임원은 “정치권이 총선 체제로 돌입하면 출마를 준비하는 쪽에서는 어떤 이유로건 잡음 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게 된다. 특히 전국에 수만 명의 직원이 산재해있는 케이티 본사와 계열사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때까지 시간을 벌려는 전략이란 지적이 케이티 내부에서도 나온다”고 전했다.

김재섭 선임기자 jskim@hani.co.kr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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