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서울 케이티(KT) 광화문 사옥에 직원들이 드나들고 있다. 윤경림 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사장)이 27일 논란 끝에 차기 대표이사 후보직을 공식 사퇴하면서 케이티 사내이사 3인 모두 공석이 됐다. 연합뉴스
윤경림 케이티(KT) 사장의 차기 대표이사 후보 사퇴에 이어 구현모 현 대표이사까지 물러나며 박종문 경영기획부문장이 대표 직무대행을 맡는 등 케이티가 사상 초유의 경영 공백 사태를 맞았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케이티 대표 후보 선출 과정은 이변과 의아함의 연속이었다. 정권과 코드를 맞추는 듯한 국민연금 이사장·기금운용본부장과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의 공개 비토는 ‘신관치’ 논란을 낳았다. 반면 견제·감시하기는커녕 현 경영진의 방패막이 구실을 한 이사회는 ‘이사회의 독립성 확대’에 대한 회의를 불러왔다. ‘케이티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이 엇갈리는 까닭이다.
■ 노골적 인사개입
케이티 사태를 보는 하나의 열쇳말은 ‘관치’다. 민영화된 기업의 경영진 선출에 정부와 정치권이 인사개입을 한 정황이 뚜렷해서다. 노종화 경제개혁연대 변호사는 28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국민연금 이사장과 기금운용본부장이 직접 나서 ‘대표 후보자 선임 절차가 불공정하다’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라고 공개 비판한 것은 매우 부적절한 처사였다”고 밝혔다.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과정을 놓고 불거진 정권 개입 의혹 이후 의결권 행사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금운용위원회 아래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를 두는 등의 노력이 일순간에 무너지면서 연금의 독립성에 의문을 불러왔다는 얘기다.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들이 집단 회견을 하며 케이티를 비판한 것은 최근 10여년간 보기 드문 풍경이었다. 케이티 경영진을 ‘이익 카르텔 집단’으로 묘사하며 내놓은 공세적 발언은, 그 메시지 너머 무엇에 대한 궁금증을 일으켰다. 낙하산을 내려보내기 위해 정부 지분이 전혀 없는 민간 대기업에 대한 인사 개입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 외풍 자초한 케이티 이사회
케이티 이사회 스스로 무덤을 팠다는 시각도 상당하다. 케이티 내부 사정에 밝은 전직 사외이사들과 노조 관계자들은 “관치도 관치이지만, 케이티 이사회가 경영진을 견제하기보단 ‘내부 카르텔’ 형성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해 외부에 개입할 빌미를 제공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케이티 전 고위 임원은 “회삿돈 횡령 혐의를 받고 있는 구현모 대표를 ‘깜깜이 심사’로 연임시키려 한 점이나 케이티 클라우드 분사로 주주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결정을 도운 점 등은 후진적 지배구조라는 비판을 낳게 한 대표 사건”이라고 짚었다. 세계적인 의결권 자문기구 아이에스에스(ISS)가 사외이사 연임 주총 안건에 모두 반대표 행사를 권고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외풍을 막기 위해 케이티가 마련한 장치들이 외려 현 경영진을 옹호하는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지적도 있다. 이석채(2009~2013) 전 회장 재임 기간과 황창규(2014~2020) 전 회장 재임 당시 각각 당시 이사회 운영 지침에 도입된 ‘현직 대표 연임 우선 심사제’와 ‘대표이사 자격 요건 변경(경영경험→기업경영경험)’이 내부 결속용으로 활용됐다는 얘기다. 케이티 전직 임원은 “낙하산 방지를 명분으로 도입된 지침 변경이었으나 실제로는 ‘현직 대표’ 등 경영진의 이해관계와도 딱 맞아떨어지는 조처였다”고 꼬집었다.
■ 전리품을 둘러싼 권력 간 쟁투
케이티가 보유한 수많은 자원을 쟁취하려는 권력 간의 쟁투라는 시각도 있다. 케이티는 계열회사만 52곳(상장사 10곳)을 두고 있는 기업집단이다. 김선웅 경제개혁연대 실행위원(법무법인 지암 변호사)은 “정부·여당이 케이티를 여전히 공기업이라고 생각하고 ‘논공행상’ 수단으로 삼는 것 같다. 케이티 대표 자리에 누가 앉느냐에 따라 대선 캠프에서 정보통신 관련 공약을 만드는 데에 기여한 이들에게 자리를 나눠줄 수도 있고, 앞으로 통신요금 규제 등 정책을 펼쳐가는 데에 있어 통신사들 협조를 훨씬 수월하게 구할 수 있을 걸로 본 게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소유분산 기업들이 외풍에 흔들리는 일을 막기 위해서건, 내부 카르텔을 깨기 위해서건, 경영권 승계의 원칙과 구체적인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등의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송민경 한국이에스지(ESG)기준원 선임연구위원은 “내부 경쟁 과정까지 투명하게 공개하긴 어렵더라도, 적어도 대표이사 후보 기준이나 절차 등은 주주총회 소집 공고나 사업보고서 등에 구체적으로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임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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