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림 케이티(KT) 차기 대표이사(CEO) 후보가 정기주주총회를 9일 앞두고
후보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케이티가 바람 앞의 등불처럼 휘청이는 모습이다. 오는 31일 주주총회에서 차기 대표이사를 결정짓지 못할 공산이 확실한 터라 ‘최고경영자 공백’이란 초유의 사태는 불가피해졌다.
공모 절차를 거쳐 윤경림 그룹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사장)이 차기 대표이사 후보로 확정된 건 지난 7일이다. 후보 사퇴 뜻을 밝힌 시점(22일)으로부터 불과 보름 전이다. 짧은 기간 사이에 윤 후보가 후보 사퇴 결심을 한 구체적인 배경은 알려지지 않았다.
케이티는 정권 교체 뒤 대표이사가 바뀌거나 연임할 때마다 ‘낙하산’ 논란에 휩싸여왔다. 그만큼 ‘정치 외풍’을 많이 받아온 기업이란 얘기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케이티 이사회가 구현모 대표 연임을 결정하자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나서 절차상의 공정성과 투명성 문제를 제기하면서 ‘셀프 연임’ 및 ‘깜깜이 경선’ 논란으로 이어졌다.
논란 끝에 케이티 이사회가 구 대표 연임 결정을 두차례나 백지화한 뒤 다시 대표이사 공모를 진행해 윤 후보를 최종 확정했다. 윤 후보 확정 전후로 국민의힘과 대통령실이 공개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정치 외풍이 노골적으로 불어왔다는 얘기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민의힘 의원들은 지난 2일
기자회견을 열어 “구현모 대표가 자신의 아바타 윤경림 후보를 세웠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이는 내부 특정인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며 ‘이권 카르텔’을 유지하려는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날 대통령실 관계자도 기자들과 만나 “그것(공정·투명한 거버넌스)이 안 되면 조직 내에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일어나고, 그 손해는 우리 국민이 보게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가 특정 기업을 언급하지 않았으나 시장에선 케이티를 겨냥한 발언이란 해석이 나왔다.
심지어 정부·여당 쪽이 특정 후보를 밀거나 내정했다는 소문도 꾸준했다. 이후 내정된 케이티 사외이사 후보와 케이티 자회사 대표이사 내정자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의 측근 내지 학교 동문으로 지목된 인사들이 줄줄이 사퇴했다. 윤 후보와 케이티 이사회에 대한 여권의 또 다른 형태의 압박으로 풀이됐다.
물론 케이티 쪽이 정치권에 개입 빌미를 준 측면도 있다. 횡령 등의 혐의로 벌금을 받은 구현모 대표의 연임 선언과 이사회의 사실상 묵인이 그 예다. 세계적인 의결권 자문기관 아이에스에스(ISS)가 사외이사 후보 3명의 연임 안건에 대해 “이사회가 지배구조 및 위험 감독에 실패했다”며 반대표 행사를 권고한 것도 이 때문이다.
케이티 새노조는 23일 성명을 내어 “지난 4개월 동안 이사회가 주총에 올릴 대표이사 후보조차 마련하지 못했고, 인사가 올스톱되며 직원들은 일손을 놓아야 했다”며 “이사회에 준엄한 책임을 묻는다”고 밝혔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은 이날 낸 성명에서 “민영화된 케이티의 대표 선임을 두고 벌어진 일을 보면 80년대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라며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은 비정상적 개입을 중단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임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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