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법원이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에 대해 내놓은 사익편취 ‘관여’ 인정 판결을 반영해 공정거래위원회의 사익편취 심사지침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총수일가가 사익편취에 ‘관여’ 했는지를 판단할 때, 눈에 띄는 직접적인 행위뿐 아니라 간접적인 장려나 묵시적 승인, 사익편취를 할 동기 등을 종합적으로 따지도록 지침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노종화 경제개혁연대 정책위원(변호사)은 23일 ‘사익편취 거래의 관여행위 판단 및 제도 개선’ 보고서에서 지난 3월 대법원의 태광그룹 사익편취 사건 판결을 반영해 공정위 심사지침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앞서 대법원은 이 전 회장과 태광그룹 계열사 19곳이 공정위의 과징금(21억8천만원) 부과와 시정명령을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공정위의 처분이 정당하다며 사건을 원심(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태광그룹 총수일가 100% 소유회사인 티시스와 메르뱅이 그룹 전체 계열사에 김치와 와인을 구매하도록 한 것은 사익편취 행위이고, 특히 이 과정에 이 전 회장의 지시와 관여가 있었다는 공정위의 판단이 맞는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에 앞서 원심은 사익편취 행위는 맞으나 이 전 회장이 관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이 전 회장에 대한 시정명령은 취소해야 한다고 봤다.
노 정책위원은 대법원이 원심 판결과 달리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거래 ‘관여’를 종합적이고 적극적으로 해석했다는 데 주목했다. 판결문을 보면 대법원은 “특수관계인(총수일가)이 계열회사의 임직원 등에게 부당한 이익제공행위(김치·와인 강매)를 장려하는 태도를 보였거나, 특수관계인이 계열회사의 임직원 등으로부터 부당한 이익제공행위 관련 보고를 받고 이를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승인했다면, 그 행위에 관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 총수일가의 관여 여부는 “행위 주체와 객체, 특수관계인 간 관계, 사익편취의 동기와 경위, 행위의 내용과 결과, 최종 이익 귀속자, 특수관계인이 사실상 관여할 지위에 있었는지, 사익편취의 동기가 있는지 등도 종합하여 판단”해야 한다고도 짚었다.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관여’에 대해 사전적 정의뿐 아니라 입법 목적도 고려한 해석을 내놓은 것이다. 정은영 대법원 공보연구원은 “특수관계인 관여의 의미와 증명에 관한 법리를 최초로 선언하고, 이익제공행위에 관한 특수관계인의 평소 태도 등 간접 사실에 의한 증명을 폭넓게 허용한 판결”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반면에 공정위의 사익편취 심사지침은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지시’ 행위와 ‘관여’ 행위에 대한 판단 방법을 구분하지 않은 채 “특수관계인이 의사결정에 직접 또는 관여할 지위에 있었는지 여부, 관련된 의사결정을 보고받고 결재하였는지 여부, 구체적으로 지시하였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고만 되어 있다. 노 변호사는 “이런 심사지침은 사실상 관여가 아니라 총수일가의 지시만을 다루고 있다고 보여진다”며 “대법원의 판결을 반영해 사익편취 행위에 대한 총수일가의 관여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평가할 수 있도록 지침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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