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이 8개월째 역성장하고 무역수지는 15개월째 적자 행진을 이어갔다. 무역적자 폭이 다소 둔화했지만, 수출이 늘어난 게 아니라 수입이 가파르게 줄어든 데 따른 불황기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올 하반기에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이른바 ‘상저하고’ 기대감과 달리 반도체와 대중국 수출 부진은 반등 조짐을 찾기 힘들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5월 수출입 동향’을 보면, 지난달 수출액은 522억4천만 달러로 작년 같은 달보다 15.2% 줄고, 수입액은 543억4천만 달러로 14.0% 감소했다. 무역수지는 21억 달러 적자로 전달(26억1천만 달러)보다 적자 폭이 다소 줄었다. 월 무역수지는 작년 3월 이후 15개월 연속 적자인데, 적자 폭은 지난 1월(125억3천만 달러)을 정점으로 2월 53억2천만 달러, 3월 47억4천만 달러, 4월 26억5천만 달러로 줄어드는 추세다.
무역적자 폭이 다소 개선된 건 가파른 수입 감소 영향이 컸다. 올해 1월에는 수출이 16.4% 감소할 때 수입은 2.8% 감소에 그치면서, 무역수지 적자가 월간 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후 수입 감소율이 지난 3월 6.4%로 커지더니 4월(-13.3%) 이후 수출 감소율과 거의 비슷한 수준에 다다랐다.
수출 부진은 여전한데 수입이 급감하며 적자를 줄인 셈이다. 경기 회복이 더뎌지면서 국내 생산이 둔화하고 각종 원자재 수입 수요가 줄어든 영향으로 전형적인 불황기 양상으로 풀이된다. 실제 4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제조업 생산은 전달보다 1.2%, 출하는 4.6% 각각 쪼그라들어, 재고율(출하/재고)이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85년 이래 가장 높았다. 기업이 생산한 제품이 팔리지 않고 창고에 쌓이면서 생산을 조절하고 있다는 얘기다.
품목별로는 자동차(49.4%)와 이차전지 양극재(17.3%)를 빼곤 15대 주력 수출품목이 대부분 두 자릿수 감소율을 나타냈다. 최대 수출품목인 반도체의 5월 수출액은 73억7천만 달러로 작년 같은 달(115억4천만 달러)보다 36.2% 감소했다. 반도체 한 품목에서만 월간 전체 무역적자의 2배인 42억 달러가 감소했다. 반도체 수출 증가율은 작년 8월 이후 10개월째 마이너스인데, 올해 들어서는 감소율이 30~40%대로 높아졌다.
주력 품목인 메모리 반도체 값 하락세는 멈추지 않고 있다. 디(D)램 고정가는 작년 6월 3.35달러에서 지난달에는 1.40달러로, 낸드플래시 고정가는 작년 5월 4.81달러에서 3.82달러로 더 떨어졌다. 수요 회복이 더디고 재고 압박이 여전하다는 얘기다. 산업부는 “하반기부터는 메모리 감산 효과와 재고 소진 등의 영향이 나타날 것”이라며 “조업일수를 기준으로 한 일평균 수출액이 작년 10월 이후 처음 24억 달러대를 회복한 점도 긍정적”이라고 밝혔다.
지역별로는 수출 감소세가 더 확산된 모양새다. 지난 4월에는 유럽·중동·러시아 지역의 수출은 증가했지만, 5월에는 러시아를 제외하곤 모든 지역에서 감소했다. 중국이 전년 대비 20.8% 감소한 것을 비롯해 미국(-1.5%), 아세안(-21.2%), 유럽연합(-3.0%), 중남미(-26.3%), 중동(-2.6%) 등 6대 주요 지역 수출이 모두 줄었다. 다만, 5월 대중 수출은 106억2천만 달러로 100억 달러대를 회복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수출 주력업종 150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 기업들은 올해 하반기 수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평균 1.3%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조상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대내외 경제 변수들이 뚜렷한 호전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어 수출은 연말까지도 흑자 전환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회승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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