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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신발 속 돌멩이’ 윤 정부 규제개혁 슬로건…어디서 본 듯한데

등록 2023-06-07 12:41수정 2023-06-08 06:30

‘전봇대→손톱 밑 가시→붉은 깃발’ 역대 규제혁파 구호
“규제 기요틴” 박근혜 전 대통령, ‘신발 속 돌멩이’ 언급도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2022년 3월21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경제 6단체장들과 오찬 회동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2022년 3월21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경제 6단체장들과 오찬 회동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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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봇대 뽑기→손톱 밑 가시·신발 속 돌멩이→붉은 깃발→신발 속 돌멩이·모래주머니’

과거 이명박 정부 이후부터 현재 윤석열 정부 때까지 각 정부가 때마다 상징적으로 내건 규제혁파 슬로건이다. 기획재정부는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7차 경제 규제혁신 전담반(TF) 회의에서 “기업활동 막는 ‘신발 속 돌멩이’ 15개 규제 푼다”는 제목을 뽑아 알림 자료를 냈다. ‘신발 속 돌멩이’를 이번 정부의 규제개혁 레토릭으로 설정한 셈이다.

역대 정권마다 규제개혁 선포 슬로건은 대부분 당선인 시절에 천명됐다. 지난해 3월21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경제 6단체장을 만난 자리에서 “(기업이) 해외에 도전하는 것은 올림픽에 출전하는 국가대표 선수나 다름없다. 운동복도 신발도 좋은 것을 신겨 보내야 하는데, (그동안은) 모래주머니를 달고 메달 따오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서도 “신발 속 돌멩이 같은 불필요 규제들을 빼내 기업들이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힘껏 달릴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윤 당선인이 사용한 ‘신발 속 돌멩이’ 표현은 공교롭게도 이미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에 사용한 비유였다. 박 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2013년 1월7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중소기업을 살리려면 거창한 정책보다 손톱 끝에 박힌 가시를 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1월25일 열린 인수위 경제1 분과 업무보고에서도 또 “손톱 밑의 보이지도 않는 작은 가시”를 언급하면서, “먼 길 좋은 구경 간다고 해도 신발 안에 돌멩이가 있으면 힘들어서 다른 얘기가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과감한 규제혁파 레토릭을 자신의 정치적 브랜드로 올려놓는 단계로까지 나아갔다. 2014년 3월1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그는 “쓸데없는 규제는 우리가 쳐부술 원수이자 제거해야 할 암덩어리”라고 한껏 자극적인 어휘를 동원해 세상을 놀라게 했고, 당시 박 전 대통령이 “규제 기요틴(단두대)”까지 말하자 집권 새누리당은 즉각 ‘손톱 밑 가시뽑기 특별위원회’를 결성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건 박 전 대통령이 “손톱 밑의 보이지도 않는 작은 가시”를 언급한 반면, 앞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누구의 눈에도 금방 확 들어오는 거대한 ‘전봇대 규제’를 설파했다는 점이다. “선거 때 목포 대불공단에 가봤는데, 공단 옆 교량에서 대형 트럭이 커브를 트는데 전봇대가 서 있어 잘 안된다.”(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2008년 1월18일 대통령직 인수위 회의) 이 전봇대는 발언이 나온 뒤 이튿날 바로 뽑혀나갔다. 이 전 대통령이 전봇대처럼 큰 규제를 내세웠다면, 박 전 대통령은 눈에 잘 띄지 않고 그동안 문제로 인식되지도 못해온 불편한 가시를 설파한 셈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붉은 깃발’을 규제혁파의 기치로 내건 바 있다. “영국은 19세기말 (산업혁명기에)마차업자들을 보호하려고 붉은 깃발법(Red Flag Act)을 만들었다. 자동차 속도를 마차 속도에 맞추려고 자동차 앞에서 사람이 붉은 깃발을 흔들게 했다. 결국 영국 자동차 산업은 독일과 미국에 뒤처지고 말았다. 규제 때문이었다.”(문재인 대통령, 2018년 8월7일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여기서 붉은 깃발은 낡은 관행과 기득권을 상징하는 것으로 풀이됐다.

어느 정부든 규제를 “기업활동을 가로막는, 혁파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지만, 전·현직 대통령마다 조금씩 다른 통치 스타일과 현실문제 인식의 차이, 나아가 가치 지향에 따라 비유하는 표현도 달랐다. “당신 해봤어?”로 대표되듯 ‘현장’을 강조한 이명박 대통령이 대불산단 현장의 눈에 보이는 굵직한 전봇대 같은 큰 규제들을 설파했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작은 가시들을 좀더 레토릭 차원에서 즐겨 쓴 거라는 촌평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사회경제에 이미 ‘기득권이 된’ 규제들을 혁파하자고 주창했다면, 윤 대통령이 국가대표 선수들이 달리기 할때 신는 신발과 모래주머니를 비유어로 선택한 건 ‘자유시장 경쟁’이라는 국정철학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는 평도 나온다. 아무튼 정부는 ‘신발 속 돌멩이’라는 규제혁파 슬로건을 10년 만에 또 사용하게 됐다.

조계완 선임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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