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재무회계에선 경제적 결손 못지않게 ‘사회적 편익’을 살펴봐야 한다. 적자가 누적되는 한국전력공사의 서울본부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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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는 벌어들인 만큼 쓰고 자본가는 쓴 만큼 벌어들인다.”
케임브리지학파로 분류되는 비주류 경제학자 니컬러스 칼도가 요약한 이른바 ‘칼레츠키 법칙’이다. 폴란드 출신의 1950~1960년대 경제학자 미하우 칼레츠키는 자본주의경제 동학을 분석하면서 경기순환, 국민소득 분배, 투자·이윤 결정요인을 해명하는 여러 학설을 제출했다. 여기서 자본가의 소비는 (자본·설비) 투자를 뜻한다.
최근 한국전력의 대규모 적자와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의 화물수송 부문 적자가 지속되는 현상을 대면하면서 칼레츠키가 제시한 이 명제가 문득 떠올랐다. 2023년 한국에서 전력·철도 법인자본은 쓰는 돈(설비투자·유지보수비)만큼 벌어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대규모 적자를 내고 있다. 한전의 영업 적자 규모는 2021년 1월~2023년 3월 누적으로 45조원에 육박한다. 영업 적자로 수십조원 규모의 ‘이익잉여금 마이너스’가 한두 번 더 이어지면 자본총계(2022년 말 42조원)가 더욱 줄어들고, 납입자본금(3조2천억원)마저 갉아먹는 부분자본잠식에 빠져들리라는 걱정마저 나온다. 한전법에는 이른바 ‘총괄원가주의’가 명시돼 있다. 원재료·설비투자·인건비 등 모든 비용 항목을 총괄한 원가에 기초해 요금을 결정해야 한다. 원가 책정에서 설비 재투자 비용을 보장해주는 것으로, 이윤과 수익성을 맞추려 투자를 줄이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뜻이 담겼다.
다만 한전이 정부·집권여당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전기요금 인상이 계속 미뤄져 이른바 “두부가격보다 콩가격(원가)이 더 비싼”(김종갑 전 한전 사장) 형국이 돼, 칼레츠키 법칙이 통하지 않는 기업이 됐다. ‘당정 협의’ 절차는 전기요금 조정 의사결정 구조에 제도적으로 명시된 것은 아니고 그저 관례일 뿐이다. 집권여당 대표가 전기요금 변경안을 발표하는 일이 드물지 않아 전기는 ‘정치요금’ 또는 ‘전기세’로도 불렸다.
코레일도 화물수송에서 매년 2천억~3천억원의 영업 적자를 낸다. 코레일의 2015~2021년 누적 영업 적자(2조4천억원) 중 화물 분야 손실이 1조7천억원이다. 수출·내수 기업이 생산한 제품을 항만 등지까지 철도로 실어나르는 화물수송 운임은 대규모 철도노선을 깔고 유지하는 원가비용을 고려할 때 이윤을 거의 내기 어려운 수준에서 책정된다. 전력에서 산업용 전기요금을 싸게 책정해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지원하듯이, 철도 역시 소득·고용을 창출하는 민간기업을 돕기 위해 원가 이하로 운임을 정하는 ‘국민경제에 유익한 적자’다. 다만 수많은 민간기업이 저렴한 요금 혜택을 보는 터라 전체 자본가계급으로 확장하면 ‘자본가는 쓴 만큼 돈을 번다’는 법칙이 여전히 관철된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전력·철도 산업이 국가독점 시장구조를 가졌지만, 이 둘은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망(네트워크)산업이라 생산량을 늘릴수록 평균비용이 감소하는 ‘규모의 경제’가 적용된다. 즉, 언제 어디서든 궁극적으로 하나의 생산자만 존재하는 ‘자연독점’ 경향을 띠는 유틸리티 상품이다. 거대한 필수 투자 규모 때문에 어떤 재벌기업도 사업을 영위해보겠다고 선뜻 나서지 못하는 산업이기도 하다.
물론 더 많은 적자가 좋다는 것도, ‘선량한 적자’라고 이름 붙이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공기업 재무회계에서는 경제적 결손 못지않게 ‘사회적 편익’이라는 성격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전 신용등급은 우리 국가신용등급(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기준 AA)과 같은 등급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S&P의 한 임원은 최근 “한전의 적자는 전기요금 부담을 한전 스스로 흡수한 공공적 역할 수행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조계완 선임기자
kye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