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역전세난 대책의 하나로 내달 중 시행을 예고한 ‘임대인 대출 규제 완화’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전세 보증금을 못 돌려받을 위기의 세입자를 위한 ‘급한 불 끄기’라는 시각과, 상환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채 보증금만을 활용해 주택을 매수한 이들을 위한 ‘갭투기 구하기’라는 시선이 엇갈린다. 당장은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지만, 다음 세입자는 은행 저당권에 밀린 ‘후순위 세입자’가 된다는 점에서, 정부가 당면한 위기를 뒤로 유예하며 더 키우는 꼴이란 평가도 있다.
13일 정부 관계자들 말을 종합하면, 정부는 전세보증금 반환 목적에 한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8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늦어도 7월 중에는 (규제 완화를)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디에스아르 규제를 완화해 기존 보증금과 새 보증금의 차액 만큼만 대출이 가능하게 해주는 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시장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는 부분은 ‘어떤’ 임대인에게 규제 완화가 적용될 것이냐다. 정부는 그 동안 무분별한 ‘무자본 갭투자’에 나선 경우 전세사기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해왔다. 그런 만큼 신규 보증금이 직전 보증금보다 줄어든 모든 임대인에 대출 규제를 완화할 경우 ‘정책 엇박자’ 비판이 나올 여지가 있다. 앞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8일 서울 구로구 공사현장 휴게시설 현장점검 중 기자들을 만나 대출 규제 완화로 인해 “가계 대출을 무분별하게 늘리는 결과와 갭투자자가 승리자가 되는 결과를 우리는 용납 못 한다는 전제를 두고 있다”고 말한 바 있지만, 현실적으로 ‘선의의 임대인’과 ‘갭투자자’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을 거란 전망이 많다.
임대인 대출 규제 완화가 자연스러운 시장 내 조정을 막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다주택 임대인들의 경우 보증금 상환이 어렵다면 보유 주택 일부를 처분해 상환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순리인데, 정부의 규제 완화 조처는 임대인들이 집값 상승기까지 ‘버티기’를 할 체력을 만들어주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 전문가인 채상욱 커넥티드그라운드 대표는 “임대인 대출규제 완화 방향엔 공감하지만, 중요한 것은 ‘디테일’”이라며 “광범위하게 규제 완화가 이뤄질 경우 역전세 시장 환경에 따라 일어날 수 있는 자산조정 등을 정부가 돈을 풀어 떠받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 세입자’도 문제다. 현 세입자는 임대인 대출 규제 완화 덕에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지만, 다음 세입자는 대출을 해준 금융회사보다 후순위가 되고, 계약 기간이 끝날 때 전세값이 더 떨어지면 보증금 손실을 입을 수 있다. 또는 저당권이 걸린 집에 전세계약을 하겠다고 나서는 세입자가 적어 대책의 실효성 자체가 떨어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김규정 한국투자증권 자산승계연구소 소장은 “가령 은퇴한 고령층 임대인 경우 소득이 없어 디에스아르 규제 완화 수요가 특히 클 텐데, 이런 경우 대출 상환능력이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며 “대출 규제 완화로 급한 불을 끄더라도, 단기 상환을 조건으로 내걸거나 상환 능력을 꼼꼼히 따져서 금융기관 채권 부실과 새로운 세입자 보증금 미반환 우려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깡통전세·역전세 위험가구 비중 현황 추정치 (자료: 한국은행)
최하얀 기자
ch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