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10월에 (라면값을) 많이 인상했는데 현재 국제 밀 가격이 그때보다 50% 안팎 내렸다. 기업들이 밀 가격 내린 부분에 맞춰 적정하게 내렸으면 좋겠다. 정부가 일일이 원가 조사해 가격을 통제할 수는 없으니, 소비자 단체가 압력을 행사하면 좋겠다.”
지난 18일 <한국방송>(KBS) ‘일요진단’에 출연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물가가 서서히 안정을 찾고 있다며 꺼낸 이야기다. 지난해 사상 최고로 치솟은 국제 밀 가격이 최근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만큼 라면 가격에도 이를 반영해달라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업계는 즉각적인 가격 인하에 난색을 보이는 중이라 실제 인하로 이어질지 미지수다. 그러나 13년 전에 올랐던 라면 가격이 내려간 적이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4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벤처기업인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앞서 라면 업체들은 지난해 밀가루 가격의 고공 행진으로 원가 상승 압박을 받자 줄줄이 가격을 올렸다. 통계청이 집계한 지난달 라면의 소비자물가지수는 124.04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1%가 올랐다. 글로벌 금융위기인 2009년 이후 14년 만에 가장 큰 상승 폭이다. 농심이 지난해 9월 라면 가격을 11.3% 인상한 데 이어 팔도와 오뚜기가 같은해 10월 각각 9.8%, 11.0%, 삼양식품도 같은 해 11월 9.7% 라면 가격을 올린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라면 가격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된 국제 밀 가격이 최근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식품산업통계정보를 보면, 지난달 국제 밀(SRW) 가격은 t당 228달러로 1년 전(419달러)보다 45.6%나 떨어졌다.
라면 업체들은 국제 밀 가격이 내려갔을 뿐이지 국내에서 만드는 밀가루 가격은 내려가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밀 가격이 내렸더라도 식품 회사들이 사들이는 가격에 반영되는 데에는 3∼6개월의 시차가 있고, 밀가루 외에 다른 가격 상승 요인도 많다는 반론도 있다.
지난 5일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라면을 고르는 외국인 관광객의 모습. 연합뉴스
이에 추 부총리의 권고처럼 국제 밀 가격 하락이 라면 가격 인하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올렸던 라면 가격을 다시 낮춘 전례가 없던 것은 아니다. 국제 금융위기로 물가가 치솟았던 2008년 라면 가격이 10% 이상 뛰었다가 2년 만인 2010년 원재료 가격 하락에 따라 가격을 내린 바 있다.
제분업체들이 국제 원맥 시세와 환율이 안정되면서 밀가루 가격을 내리자 라면 업체들도 마지못해 가격 인하 대열에 동참한 것이다. 당시 라면 업체들은 정부가 2008년 8월부터 같은해 말까지 한시적으로 물가 안정을 위해 밀가루 등 품목에 대한 관세를 없애도 인하가 어렵다고 버텼다. 제분업체로부터 밀가루를 사들여 사용할 뿐 밀가루를 직접 수입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제분업체들이 2008년 7월부터 1년6개월여 동안 세차례 밀가루 가격을 내리자 결국 백기를 들었다.
다만 라면 가격 인하 폭은 20∼50원으로, 기대에는 못미쳤다. 2008년 밀가루 등 원재료 인상을 핑계로 많게는 100원까지 올린 것에 견주면 낮은 인하 폭이었다.
당시 신라면 가격을 650원에서 750원으로 15.4% 올렸던 농심은 신라면, 안성탕면 등 6개 제품의 가격을 2.7∼7.1% 인하했다. 그러나 신라면은 750원에서 730원으로, 인하 폭(2.7%)이 당시 인하 품목 가운데 가장 낮았다. 오뚜기도 라면 가격을 많게는 6.7% 내렸지만, 진라면은 750원에서 720원으로, 인하 폭이 가장 낮았다. 주력 상품은 최소한만 인하한 것이다.
한국야쿠르트도 팔도맵시면, 왕라면 등 6개 제품을 최고 50원 낮췄지만 팔도비빔면과 왕뚜껑은 인하 대상에서 빠졌다. 당시 삼양식품이 주력 상품인 삼양라면을 가장 많이(50원) 내린 것과도 대조적이었다.
조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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