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경제부총리까지 나서 질타한 라면 가격. 지난달 라면 물가지수는 1년 전에 견줘 13% 넘게 올랐다. 8개월 연속 오름세다. 사진은 대형마트 라면 매대를 둘러보는 소비자의 모습. 연합뉴스
‘첫 출시됐던 1963년엔 10원이었던 라면 가격이 이젠 1000원.’
올해로 탄생 60주년을 맞은 ‘라면’은 여전히 서민의 한끼 대용 간식의 대명사다. 하지만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며 국제 밀 가격이 폭등하면서 라면 물가도 치솟았다. 최근 국제 밀 가격이 다시 하향세를 보이면서 라면 가격도 내려야 한다는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원재료값이 오를 땐 제품 가격을 재빨리 올리면서 원재료 가격이 내릴 땐 가격 인하에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불만이다.
19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식품산업통계정보를 보면, 밀가루를 만드는 데 주로 쓰이는 국제 소맥(SRW·적색연질밀)의 6월 가격은 톤당 231달러 수준으로, 1년 전인 2022년 6월 371달러에 견줘 37.8%나 내렸다. 가격이 가장 크게 올랐던 2022년 5월 419달러에 견주면, 45% 떨어졌다. 라면의 또다른 주재료인 팜유(식용유)를 만드는 대두 가격 역시 2022년 6월 톤당 621달러에서 이달 503달러로 19% 넘게 하락했다. 옥수수 가격 역시 298달러에서 239달러로 19.8% 내렸다. 가격이 폭등했던 지난해 5~6월에 견줘 라면의 원재료 가격 부담이 크게 낮아진 셈이다.
국내 라면 빅3로 일컫어지는 농심·삼양식품·오뚜기 등 3사는 지난해 줄줄이 라면 가격 인상에 나선 바 있다. 지난해 9월 농심은 출고가를 평균 11.3%, 오뚜기는 11.0% 인상했으며, 11월엔 삼양식품이 가격을 9.7% 올렸다.
통계청의 ‘소비자물가동향’도 라면 가격의 상승폭을 보여준다. 지난달 라면 소비자물가지수는 124.04로, 지난해 5월에 견줘 13.1% 상승했다. 라면 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9월 3.5%에서 지난해 10월 11.7%로 오른 뒤 11월(12.6%), 12월(12.7%), 올해 1월(12.3%), 2월(12.6%), 3월(12.3%), 4월(12.3%)에 이어 지난달까지 8개월 연속 10%를 웃돌았다.
원재료 가격이 올해 들어 하락했는데도 라면 물가는 여전히 고공행진 중인 셈이다. 라면 업체들이 원재료 가격 하락을 라면 가격에는 반영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18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 방송에 출연해 “(기업들이 국제 밀 가격 상승을 이유로) 지난해 9∼10월 가격을 많이 올렸는데, 지금은 밀 가격이 1년 전 대비 약 50% 내린 만큼 다시 적정하게 가격을 내렸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라면 업계를 압박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업계는 즉각적인 가격 인하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국제 밀 가격 하락이 곧바로 제품 원재료 가격 인하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라면 업계 한 관계자는 “가격이 올랐을 때 사 둔 밀 재고분이 3~6개월치가 남아 있어 이를 먼저 소진해야 한다. 밀값 상승과 라면 가격 인상에 시차가 있었던 것처럼 인하에도 시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국제 밀 가격이 하락했어도 제분회사가 밀가루 가격을 인하하지 않고 있는데, 라면 회사만 비난하는 것은 억울하다”며 “또 라면의 다른 원료인 전분, 설탕 등 다른 원재료 가격은 여전히 상승 중이며, 인건비·물류비 등 기타 제반 비용도 올라 당장 가격 인하에 나서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 가격 인상 영향으로 라면업계의 올 1분기 실적이 좋아진 것도 가격 인하 요구에 힘을 싣고 있다. 농심의 올해 1분기 매출은 8603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7363억원)보다 16.9%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343억원에서 637억원으로 85.8% 증가했다. 오뚜기 역시 전년 동기(7424억원)보다 15.4% 늘어난 8567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590억원) 대비 10.7% 증가한 653억원을 기록했다. 삼양식품은 매출은 2455억원으로 전년 동기(2022억원) 대비 21.5%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239억원으로 전년 동기(245억원)보다 소폭(2.6%) 감소했다.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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