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정주 넥슨그룹 회장의 유가족이 지난달 말 상속세 일부를 넥슨그룹의 지주회사 엔엑스시(NXC)의 비상장주식 85만2190주(29.3%)로 대신 냈다. 이를 국공채·부동산 등 현물로 상속세를 내는 ‘물납’이라고 한다.
물납 주식을 보유하게 된 기획재정부는 넥슨그룹의
2대 주주가 됐다. 기재부는 “(물납 주식의) 처분이 목적이어서 2대 주주가 됐다는 표현은 부적절하다”며 “최대한 빠르게 매각하려 한다”고 말한다. 매각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위탁한다. 과연 정부의 바람대로 이른 시일 내에 매각이 가능할까.
‘경영권 프리미엄’ 붙었으니 20% 할증
과세 당국은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하 상속세법) 63조 3항에 따라, 상속 재산을 평가할 때 최대주주의 주식은 평가액에 20%를 할증한다.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은 주식을 물려받았으니 상속세를 더 내야 한다는 취지다. 김정주 회장 유가족이 내야 할 상속세는 약 6조원으로 추정된다. 이미 엔엑스시 상속 주식 상속분(196만3천주)의 평가액과 그 평가액의 20%를 더한 금액이 6조원에 반영돼있는 것이다.
거꾸로 물납하는 주식을 평가할 때도 경영권 프리미엄을 적용해 더 비싸게 평가해준다. 물려받는 재산에도 경영권 프리미엄을 적용해 평가했으니 형평성 원칙에 따라 물납 주식 평가액에도 이를 인정해주는 것이다. 엔엑스시 물납 주식 85만2190주는 본래 비상장주식 평가 산식에 따라 3조9천여억원으로 평가됐지만 20%를 할증해 최종적으로 4조7천억원이 된 셈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합리적이다.
제값에 매각 가능할까
문제는 물납 주식을 매각할 때 발생한다. 상속 재산을 평가할 땐 최대주주의 주식이었는데, 그 중 일부를 떼어 물납한 주식으로는 최대주주가 되지 못한다. 경영권 프리미엄이 사라지는 것이다. 엔엑스시 물납 주식 29.3%를 사들여도 김정주 회장의 부인 유정현 엔엑스시 감사와 두 딸의 지분을 더하면 69.34%에 달해 경영권을 쥐지 못한다.
정부가 징수해야 할 상속세 6조원 가운데 4조7천억원을 비상장주식으로 받은 것인데, 이를 되팔 땐 4조7천억원을 모두 회수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국민 입장에선 손해를 보는 셈이다. 실제 캠코가 1997년부터 2021년 8월까지 매각을 완료한 물납 비상장주식(총 785종목)의 물납 금액은 1조4983억원인데 매각 금액은 1조142억원(67.7%)에 그친다. 여기엔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지 않은 주식도 포함돼 있다.
그나마 싼값에 매각이라도 하면 다행이다. 비상장주식은 시장에서 거래가 이뤄지지 않아 유동화가 쉽지 않다. 2021년 8월 기준 물납 비상장주식은 344종목(5634억원)으로, 평균 보유 기간만 10.8년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실소유주 논란이 일었던 자동차 부품회사
‘다스’가 대표적인 예다. 이 전 대통령의 처남 김재정씨 사망 이후 그의 아내 권영미씨가 상속세로 물납한 다스의 비상장주식은 여전히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엔엑스시 물납 비상장주식 평가금액은 조 단위가 넘는 역대 최대 규모여서 구매자가 나타날 가능성이 더 희박하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큰 평가액은 약 3천억원으로, 2021년 고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사주일가가 물납한 주식이다.
물납 평가 땐 유동화 어려운 점 반영해야
정부는 이런 이유로 비상장주식을 ‘최후의 상황’에서만 물납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해두긴 했다. 현금 등 금융자산만으로 상속세 납부가 어려울 때 물납이 허용되는데, 국공채, 처분 제한 상장주식, 국내 소재 부동산 순으로 먼저 물납하고 모자랄 경우에 비상장주식 물납이 가능하다. 매각을 위탁받은 캠코도 비상장주식 매각에 힘쓰면서도 배당 및 상장을 유도해 수익 창출을 추진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납세자가 유동화가 어려운 비상장주식으로 상속세를 대신 내는 혜택을 본 셈이니 물납 평가액을 할인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엔엑스시 주식 85만2190주의 본래 가격에 20%를 가산해 4조7천억원으로 평가한 것인데, 같은 평가액에 85만2190주보다 더 많은 주식을 받아내야 한다는 의미다. 오종문 동국대 교수(경영학)는 “물납 받은 자산을 처분할 때 당초 할증된 가액을 받지 못할 것이 예상되므로 할증이 아니라 디스카운트를 하는 등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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