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8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열고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8일 ‘이권 카르텔 보조금을 폐지해 수해 복구 예산에 투입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을 두고 재정당국인 기획재정부조차 난색을 표하고 있다. 나라 재정 운용의 절차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어서다.
20일 기재부 당국자는 윤 대통령의 발언 내용이 실행될 수 있는 것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당혹감을 내비치며 “노 코멘트”라며 “대통령실과 당에서 나온 발언인 만큼 기재부가 관여할 사안이 아니”라고 짧게 말했다. 기재부가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조심스럽게 반응하는 이유는 ‘부정한 보조금을 걷어 수해 복구에 쓴다’는 것이 사실상 실행이 불가능한 정치적인 수사에 그칠 가능성이 커서다.
국가 예산은 개인이 자신의 한 계좌에서 출금해 다른 계좌에 입금하듯이 쉽게 옮겨 쓸 수 없는 구조다. 국가재정법에 기재부 장관 승인을 얻어 행정부 재량으로 예산을 옮겨 쓸 수 있는 ‘예산 전용’ 제도가 마련돼있지만, 유사한 사업단위 내에서만 허용된다. 사업단위를 넘어서는 전용은 불가능하다.
특히 보조금을 깎아 수해복구에 쓰려면 국회 논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현행법상 올해 편성한 기존 예산을 폐지하려면 예산 삭감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이 필요해서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통과시킨 나라 예산인만큼 이미 편성된 예산을 수정할 때도 국회 동의를 얻으라는 취지다.
하지만 아직 윤 대통령이 지적한 이권 카르텔 부정수급 규모조차도 제대로 조사·파악되지 않았고, 기재부도 보조금 폐지를 위한 추경 준비를 내부적으로 전혀 하고 있지 않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도 19일 수해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추경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대통령 발언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일반론적인 것”이라며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보조금을 삭감하려면 어떤 보조금이 어느 정도 비효율적인지 파악해 정확하게 국회에 제출(추경)해야 하는데, 기재부는 추경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면서 “만약 행정부 재량으로 단위 사업을 넘어 예산을 조정하려는 것이라면 근대국가 헌법의 원칙을 위배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안태호 기자
ec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