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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전관 특혜가 엉터리 설계 불렀나…최소 9곳 ‘부실 커넥션’

등록 2023-08-02 19:35수정 2023-08-03 02:44

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이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건설카르텔과 부실시공 근절을 위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책임관계자 긴급대책회의'에서 사과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이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건설카르텔과 부실시공 근절을 위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책임관계자 긴급대책회의'에서 사과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전관 없는 업체를 찾기 어렵다.” “전관 없으면 컨소시업에 포함을 시켜주지 않는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2일 서울 강남구 엘에이치 서울지역본부에서 한 회의에서 쏟아낸 발언 중 일부다. 엘에이치가 발주한 15곳 공공아파트의 철근 누락 사태 배경에 ‘엘에이치 전관’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설계→시공→감리’ 전 단계에서 확인된 총체적 부실의 원인으로 비용 절감, 낮은 숙련도, 무량판 공법의 한계 등이 두루 지목되지만 ‘사람’도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그 중심에 엘에이치에서 퇴직한 뒤 설계·감리 업체 등에 취업한 ‘전관’이 서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심은 엘에이치 전관이 건설업계에 넓게 퍼져 있다는 데서 일단 시작된다. 이번에 ‘철근 누락’이 문제가 된 15개 단지 중 13개 단지를 설계한 업체가 엘에이치 전관이 현재 근무 중이거나 적어도 2021년까지 대표 및 고위 임원을 지낸 곳이다. 설계 오류가 부실 시공 원인으로 확인된 10개 단지에서 ‘전관 업체’가 설계에 관여한 곳도 최소 9개 단지로 파악된다. 전관이 무슨 구실을 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전관과 부실 간의 높은 상관도는 확인되는 셈이다.

엘에이치의 수의 계약 실태를 따져본 내용이 담긴 감사원 감사 자료를 보면, 2016년 1월1일~2021년 3월31일 사이 엘에이치 퇴직자가 재취업한 업체와 엘에이치가 공사·용역·물품을 계약한 금액은 43조1148억원에 이르며, 이 기간 엘에이치 3급 이상 퇴직자 604명 중에서 계약업체 재취업자는 304명, 재취업 업체는 153곳이다.

엘에이치가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한 2021년 6월 이전 시점에 주목하는 시선도 있다. 엘에이치는 감사원 감사 뒤 엘에이치 발주 사업의 설계회사 공모심사에 엘에이치 내부 직원이 아예 참여할 수 없도록 하고 2급 이상 고위직은 퇴직 이후 설계회사 등 유관기업 취업을 제한하는 취업심사를 받도록 한 조처를 단행한 바 있다. 공교롭게도 철근 누락이 드러난 아파트 15곳 가운데 12곳은 제도 개선 시점 이전인 2018~2020년에 착공한 곳이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청한 한 건축사는 “당시에는 엘에이치에서 퇴직한 직원을 ‘낙하산’이라고 부를 정도로 중소 규모 건축·구조 설계업체를 중심으로 전문자격증을 갖춘 엘에이치 직원 모시기 경쟁이 치열했다”고 말했다.

물론 제도 개선 이후에 엘에이치 퇴직자의 재취업이나 전관 특혜가 사라졌는지는 미지수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취업 제한 회사의 자본금 기준 등이 느슨해 (규정을) 피해 취업할 수 있는 곳이 많다. 설계·감리 등 작은 회사에 얼마든지 취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엘에이치의 제도 개선 시점에 얽매이지 말고 폭넓은 조사의 필요성이 있다는 얘기다.

엘에이치 전관은 주로 직접 설계나 감리 업무를 맡기 보다는 ‘수주’에 모종의 역할을 한다는 게 중론이다. 엘에이치가 발주하는 일감 따내는 게 전관의 핵심 업무라는 뜻이다. 전관을 적지 않은 보수를 주고 영입한 설계·감리 등 용역업체들로선 본업인 설계와 감리에 대한 투자를 줄이거나 숙련된 고급 전문가 채용을 소홀히 할 수 있는 셈이다. 엘에이치 전관이 설계·감리 등의 업무를 보더라도 전문성이 낮아서 부실 공사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전관은 통상 50대 이상 고령자이기에 최신 공법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일을 그르친 게 아니냐는 뜻이다. 무량판 공법도 2017년에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본격 적용된 기술이다.

전관을 겨냥한 엘에이치와 정부의 칼끝은 이번 부실 공사 사태에 한정되지 않을 전망이다. 엘에이치는 ‘반카르텔 공정건설 추진본부’를 설치해 설계·심사·계약·시공·자재·감리 등 건설공사 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전관예우, 이권 개입, 담합, 부정·부패 행위 등을 파악하고 이를 근절하는 대책을 수립키로 했다. 특히 이번 15곳 공공아파트의 지하주차장 철근 누락 사태를 불러온 설계·시공·감리 관련 업체와 관련자를 경찰에 수사 의뢰하기로 한 터라 향후 수사의 전개에 따라 철근 누락 부실 공사로 불거진 전관 문제는 엘에이치가 관장하는 사업 전반으로 확대될 수 있다.

최종훈 최하얀 기자 cjh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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