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에서 로켓배송 중인 쿠팡맨 모습. 연합뉴스
쿠팡 퀵플렉스 기사 40대 김아무개씨는 땡볕 더위 속에 배송을 하다 병이 날 지경이라고 했다. 다른 택배사 배송기사와 달리 퀵플렉스 기사는 쿠팡에서 판매하는 물건이라면 무게가 얼마든, 형태가 어떻든 무조건 배송을 해야 하는 탓에 여름철 무더위 때는 부담이 더 크다. 김씨는 “며칠 전엔 엘리베이터 없는 4층에 창문형 에어컨을 배송하느라 숨이 턱까지 차고 다리가 풀렸는데, 박스를 살펴보니 무게가 38㎏이더라. 이 정도면 화물로 처리해야 함에도 무료배송을 내세우는 쿠팡은 퀵플렉스 기사들의 값싼 노동을 통해 해결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연일 35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이어지는 가운데, 쿠팡 퀵플렉스 노동자들이 폭염 속에서 ‘중량 제한 없는’ 배송 노동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퀵플렉스는 1톤 트럭을 보유한 특수고용직 배송기사에게 건별 수수료를 주고 배송을 맡기는 쿠팡의 간접고용 형태를 말한다. 전국택배노조 산하 쿠팡지회는 쿠팡의 물류배송 자회사인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씨엘에스·CLS)에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6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쿠팡 퀵플렉스 노동자들은 여름철에 특히 극심한 과로를 겪고 있다. 우체국택배와 씨제이(CJ)대한통운 등 일반 택배회사가 대부분 30㎏ 이상 상품의 취급을 제한하는 것과 달리, 쿠팡은 이런 제한이 없는 탓이다. 쿠팡이 직고용하는 쿠팡친구(쿠친·옛 쿠팡맨)의 경우엔 ‘1회 30㎏ 이하 배송’이란 중량 제한 규정이 있지만, 자회사인 쿠팡 씨엘에스가 간접고용하는 퀵플렉스 기사들에겐 사실상 이런 제한이 없다.
실제로 퀵플렉스 기사들은 온갖 종류의 ‘무거운’ 물건을 배송한다. 30대 퀵플렉스 기사 조아무개씨는 “시멘트, 벽돌, 게임용 의자, 헬스 자전거, 건조기, 이동식 에어컨, 소파 등 배송을 안 해본 상품이 없다”며 “기사들 사이에 ‘똥짐’이라고 불리는 이형화물(세 변의 합이 160㎝ 이상·중량 25㎏ 이상)에 대한 분류가 전혀 없다. ‘쿠팡이 파는 물건은 무조건 배송한다’가 원칙”이라고 말했다.
다른 일반 택배회사들의 경우, 이형화물을 배송할 경우엔 고객에게 추가 운임을 받고, 기사에게도 추가 수수료를 지급한다. 씨제이대한통운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배송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를 위해 30㎏이 넘는 상품은 일반택배가 아닌 화물로 처리하도록 하고, 접수를 받지 않는다”라며 “(중요한 고객사와의 관계 탓에) 부득이 배송해야 할 경우엔, 사전에 노조와 협의한 내용에 따라 추가 수수료를 지급한다”고 설명했다.
쿠팡 퀵플렉스 기사들을 더욱 괴롭히는 것은 ‘합배송’이다. 예를 들어, 6㎏짜리 물건이라도 소비자가 4개를 한꺼번에 구매할 경우, 1건 수수료에 24㎏을 한꺼번에 배송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국택배노조 쿠팡지회 관계자는 “소비자가 에이포(A4) 용지나 고양이 모래 등을 한꺼번에 주문하면, 건당 700~800원대에 불과한 수수료를 받고 20~30㎏를 배송하게 된다. 쿠팡 씨엘에스는 이러한 무대책 배송시스템을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쿠팡 씨엘에스의 행태는 고용노동부의 인력 운반 중량 권장 기준(KOSHA CODE 지침)에도 위배된다. 이 기준에 따르면, 36~50살 남성 배송 노동자의 경우, 시간당 2회 이하 배송 작업 시 27㎏, 시간당 3회 이상 배송 시 13㎏으로 중량을 제한하게 돼 있다.
앞서 2020년 3월, 40대 쿠팡맨(현재 쿠팡친구)이 과로사했을 당시에도 쿠팡의 과도한 배송 무게를 둘러싼 논란이 일었다. 이후 쿠팡은 가장 크게 문제가 된 생수만을 전문적으로 배송하는 외주 시스템인 ‘워터플렉스’를 만드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쿠팡 씨엘에스가 간접 고용하는 퀵플렉스 기사는 여전히 사각지대에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쿠팡 쪽은 “씨엘에스는 다른 택배사와 유사한 수준의 중량 기준을 적용하고 있으며, 다른 택배사와는 달리 가벼운 비닐 포장이 상품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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