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한국 경제가 양대 암초를 만났다. 산업·물가 지표가 일제히 악화한 가운데 중국 경기 불안, 유가 상승 등 돌발 변수가 부상해서다. 국내 경기 둔화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하반기 경기 회복에 무게를 두던 정부 쪽의 시각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7일 펴낸 ‘경제동향 9월호’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수출 부진이 다소 완화되고 있지만 중국 경기 불안 등 대외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또 “중국 경제의 하방 위험이 커지고 국제유가 상승으로 소비자물가 상승세가 확대되면서 경기 부진이 완화되는 흐름을 일부 제약할 가능성도 있다”고 진단했다.
이제까지 연구원은 상반기 ‘경기 바닥론’에 적극적으로 군불을 지펴왔다. 앞서 지난 6월 경기 진단 보고서에서 처음으로 “경기 저점을 시사하는 지표들이 늘고 있다”고 평가한 뒤, 7월에도 “우리 경제는 경기 저점을 지나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었다. 정부의 ‘상저하고’(경기가 상반기에 나쁘고 하반기에 좋아짐) 전망에 힘을 실어준 셈이다.
그러나 정규철 케이디아이 경제전망실장은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중국 경기 불안, 국제 유가 상승 등이 국내 성장과 물가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졌다”면서 “물가가 오르면 소비가 위축되고 기준금리 인상으로 이어질 경우 추가적으로 경기를 압박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간 케이디아이에 발맞춰 “국내 경기 둔화 흐름이 완화되고 있다”고 평가해온 정부의 시각에도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9월 초 수출과 중국 경기 등 앞으로 나올 지표들을 추가로 살펴보고 톤을 조정할 것”이라고 했다.
금융시장도 일찌감치 악재에 반응하고 있다. 이날 한국 코스피를 비롯한 중국, 일본, 홍콩, 호주 등 아시아 주요국 증시는 일제히 약세를 보였다. 국제유가 급등으로 고물가·고금리 상황이 길어질 수 있다는 염려가 커진 까닭이다.
6일(현지시각) 런던 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 11월물은 사우디아라비아·러시아 등 산유국의 감산 연장 여파로 전날보다 0.56달러 오른 배럴당 90.6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5일에 지난해 11월16일(92.86달러) 이후 최초로 90달러를 돌파한 뒤 오름세를 이어간 것이다. 같은 날 국내에서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 종가도 전날 대비 1.38달러 오른 배럴당 90.58달러를 기록했다.
7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15.08포인트(0.59%) 내린 2,548.26으로 장을 마쳤다. 코스닥지수는 11.59포인트(1.26%) 떨어진 906.36으로 거래를 마치며 900대를 유지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4.9원 오른 1,335.4원을 기록했다. 연합뉴스
한국은행은 올해 국제유가가 배럴당 평균 82달러(브렌트유 기준)에 머물 거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올해 연간 소비자 물가 상승률을 3.5%로 전망했는데, 유가 고공행진이 계속되면 물가가 다시 뛸 가능성이 크다.
중국 세관 당국인 해관총서도 이날 “중국의 8월 수출액이 지난해 같은 달에 견줘 8.8%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감소폭이 다소 축소되긴 했지만 지난 5월부터 넉 달 연속으로 수출 감소세를 지속했다. 중국 위안화 약세 등으로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4.9원 오른 1335.4원에 마감하는 등 우리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되는 모습을 보였다.
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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