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세종청사에 있는 공정거래위 본부. 연합뉴스
독점부품 공급사라는 지위를 지위를 남용해 삼성전자에 스마트기기 부품공급에 관한 장기계약(LTA) 체결을 강제한 미국 통신용 반도체 업체 브로드컴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19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21일 브리핑에서 “공정위는 9월13일 전원회의 심의를 통해 브로드컴이 삼성전자에 대해 각종 불공정한 수단을 써 일방적으로 불리한 부품공급 장기계약 체결을 강제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191억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브로드컴은 스마트폰, 태블릿피시(PC) 등 스마트기기에 적용하는 최첨단·고성능 무선통신 부품에서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가진 반도체 사업자다. 삼성전자는 고성능 제품에 적용하는 부품의 대부분을 이 회사에 의존하고 있었다. 하지만 2018년부터 부품 경쟁자의 진입이 시작되자 브로드컴은 삼성전자가 자사 부품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상황을 이용하려 했다. 삼성전자와 부품 장기계약을 맺어 다른 경쟁사와의 거래 관계를 막으려 한 것이다.
부품 다변화를 준비하던 삼성전자가 브로드컴의 장기계약 요구를 거부하자 브로드컴은 2020년 2월부터 부품 구매주문 승인 중단, 선적 중단, 기술지원 중단 등의 수단을 동원해 계약 체결을 압박했다. 브로드컴은 이들 조치를 ‘폭탄 투하’, ‘핵폭탄’에 비유하고 ‘기업윤리에 반하는’, ‘협박’이라고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었다.
결국 삼성전자는 2021년부터 3년간 매년 브로드컴 부품을 최소 7억6천억달러를 구매하고, 실제 구매금액이 이에 미치지 못하면 차액을 배상하는 내용의 장기계약에 서명할 수 밖에 없었다. 구매금액을 맞추기 위해 삼성전자는 당초 채택한 경쟁사 제품을 브로드컴 부품으로 전환했다. 보급형 모델에 고성능 브로드컴 부품을 탑재했고, 다음연도 물량을 미리 구매하는 등 8억달러어치의 부품을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2021년 출시한 갤럭시 에스(S)21에 기존 부품 계약을 파기하고 더 비싼 가격의 브로드컴의 부품을 채택하면서 단가 인상으로 추가 비용 1억6천만달러가 발생하기도 했다.
한 위원장은 “삼성전자의 금전적 불이익뿐만 아니라 브로드컴의 경쟁사들은 제품 가격과 성능에 따라 정당하게 경쟁할 기회를 빼앗겼고, 장기적으로는 부품제조사의 투자 유인이 없어져 혁신이 저해됐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공정거래법상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 과징금 부과 기준율 상한(매출액의 2%)을 적용해 과징금을 산출했다. 현재는 법이 개정돼 매출액의 4%까지 부과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은 2022년 7월 브로드컴이 동의의결 개시를 신청하며 200억원 규모 반도체 상생기금 조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동의의결안을 마련한 바 있다. 동의의결은 사업자가 제안한 피해구제 등 시정방안에 대해 공정위가 이해관계자 의견수렴 등을 거쳐 타당성을 인정하면 위법 여부를 확정 짓지 않고 사건을 종결하는 제도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브로드컴이 마련한 동의의결안에 대해 자사 피해 구제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반대하자 공정위는 지난 6월 동의의결안을 기각했다.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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