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는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를 아우르는 지정학적 요충지로 유명하다. 지중해와 홍해, 인도양을 연결하는 수에즈운하는 이를 상징한다.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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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3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이집트를 주제로 한 두개의 유명 전시회가 열렸다. 2021년 6월부터 2022년 4월까지 1년 가까이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투탕카멘: 파라오의 비밀’ 전시회가 열렸고, 2022년 12월부터 2023년 3월까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이집트 미라전’이 열렸다. 두 전시회 모두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으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이집트 문명사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이집트 나일강 문명은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의 메소포타미아 문명, 인더스강 유역의 인더스 문명, 황하강 중류의 황하 문명과 견주는 고대 4대 문명 중 하나다. 특히 나일강은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이며, 수리 문명의 대표는 고대 이집트다. 이집트는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사막지대이지만 나일강에서 물을 공급받았고, 나일강 범람에 따른 삼각주 형성으로 곡물이 자랄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을 보유했다.
고대 7대 불가사의에 속하는 기자피라미드(Giza Pyramids)는 이미 기원전 2550~2480년에 세워졌다. 제19왕조의 람세스 2세가 천연 사암층을 뚫어 기원전 1244년에 완공한 아부심벨 신전, 기원전 1세기에 건설된 것으로 보이는 덴데라 신전 내 하토르 신전, 고대 이집트부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까지 2천여 년에 걸쳐 세워진 신전으로 알려진 룩소르의 카르나크 신전 등 유구한 건축역사를 자랑한다.
수에즈운하 품은 전략적 요충지
이집트는 자체의 지리적 특성에 더해,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를 아우르는 지대에 속해 있다. 즉, 지정학적 요충지로 유명하다. 기원전 3100년부터 기원전 4세기께까지 지속했던 고대 이집트 이후에도 그리스·로마 통치기 등을 거치며 유럽 문물의 영향을 받음과 동시에 점성술, 수학, 공학, 문학 등의 수준이 로마에 비견되는 위상을 차지한 적도 있다. 로마 통치기에 이집트는 로마의 곡창지대가 됐고, 알렉산드리아는 교역 중심지로 자리매김해 로마에서도 매우 중요한 도시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초기 기독교가 이집트에 유입돼 현재의 콥트 기독교를 남겼다.
이후 사산왕조의 페르시아 통치와 비잔틴제국의 통치를 거쳐 기원후 639~642년에 아랍 이슬람 제국에 점령되며 이집트에는 이슬람 문화 및 종교가 자리잡았다. 이는 지금까지 이어져 현재 전체 인구의 약 90%가 이슬람교도로, 국교도 이슬람교이다. 같은 이슬람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 핵심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19세기께 수에즈운하 건설 등 여러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유럽 은행에 감당하기 어려울 수준으로 큰 규모의 차관을 받았고, 이를 계기로 영국은 근현대사에서 70여 년간 이집트를 통치했다. 이 시기에 영국
과 프랑스 등 유럽의 근현대 문화와 교육방식 등이 전파됐다.
19세기 후반부터 1930년께까지 이집트 제조업은 외국 제품 수입을 선호하는 자유무역 정책으로 크게 발달하지 못했다. 국민의 민족주의 열망을 바탕으로 소득을 늘리고 경제를 다각화하기 위해 이집트 정부는 1930년부터 외국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며 제조업 발전을 촉진한다. 또한 이집트 은행들은 1930년대 이후 국내 생산을 촉진하기 위해 기업대출을 확대했다. 같은 시기 면화 제직, 방적 및 직조(리넨·실크·면화), 인쇄, 운송, 식물성 유지 추출, 의약품 제조를 위한 이집트 기업이 다수 설립됐다. 이집트는 제2차 세계대전(1939~1945년) 당시 연합군의 주요 거점이었으나 유럽에서의 수입이 대부분 차단됐고 이런 상황으로 제조업, 특히 섬유제품의 발전에 더욱 박차를 가한다.
이집트에선 1964년 소련과 장기 무역 및 원조 협정을 체결한 뒤 중공업이 본격적으로 발전했다. 이집트 헬완 철강단지의 한 주철공장에서 작업하는 노동자. REUTERS
1950년대부터 대부분의 대규모 제조 기업·시설이 국유화됐고, 1964년 소련과 장기 무역 및 원조 협정을 체결한 뒤 중공업 발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970년 소련과의 추가 협정 및 지원을 통해 헬완 지역에 철강단지를 확장하고, 하이댐에서 생산한 전력을 사용하는 알루미늄단지를 포함해 여러 전력 기반 산업시설을 구축했다. 1971년에는 헬완제철소의 코크스 장치에서 생산된 가스 기반의 질산암모늄 공장을 완공해 운영한다. 아스완에서는 질산염 비료 공장이 설립됐다. 2023년 들어 국영기업의 민영화가 가시화했으나, 21세기 초까지 대부분의 대형 제조기업은 여전히 국가가 소유하거나 운영했다.
그럼에도 이집트는 아프리카 권역에서 견고한 제조업 국가임이 자명하다. 이집트의 아프리카 제조업 부가가치(MVA) 비중은 1970년대 7% 수준이었으나, 2010~2019년 22%로 세 배 이상 증가했다. 1970년대 이집트의 아프리카 내 제조업 부가가치 생산 순위는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나이지리아에 이어 3위였다. 이후 1990년대 초반 국가 산업 개발 육성으로 아프리카 내 제조업 부가가치 비중이 급증해 1995년에는 나이지리아, 1998년에는 남아공을 추월하고 아프리카 내 최대 제조업 생산 국가로 부상했다. 2019년 기준 이집트, 나이지리아, 남아공, 모로코, 코트디부아르 등 아프리카 상위 5개 국가가 2017~2019년 아프리카 대륙 제조업 부가가치의 62%를 차지한다.
이집트는 중동국가이자 아프리카국가이기도 하다. 이른바 중동·북아프리카(MENA) 지역의 주요 국가다. 이집트는 아랍연맹 본부를 유치했고, 지속적으로 연맹의 수장을 배출해온 명실상부한 아랍 지역의 중심 국가다. 역사적으로 다수의 아랍 국가에 큰 영향력을 끼친 강대국이었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포함해 다양한 아랍 국가들의 중재자 역할을 자처했다. 이집트는 캠프데이비드 협정을 통해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첫 아랍 국가다. 대부분의 아랍 국가는 이집트의 중재 역할을 신뢰한다.
넉살 좋은 만인의 이웃 나라
이집트는 러시아 및 유럽연합(EU) 국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대유럽연합 수출입은 이집트 상품 교역에서 최대 규모를 차지한다. 에너지자원, 섬유, 농산물 등을 유럽연합 국가에 수출한다. 이집트는 서쪽으로 리비아, 남쪽으로 수단과 국경을 마주하며 내전으로 발생한 난민을 수용했다. 또한 미국뿐 아니라 러시아와도 사이좋게 지낸다. 이집트와
러시아의 관계는 군사·원전·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추진하며 가까워졌고, 중국과도 여러 분야에서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외에 러시아와 중국 등도 중시하는 다원외교를 펼친다. 2023년 4월 중동 지역 이드(라마단 종료를 기념하는 명절) 연휴 때 일어난 수단 사태 이후 20만 명이 넘는 난민과 수단 주재원을 포용하고 있는 나라도 이집트다. 최근에는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 등 신흥경제 5개국)의 이집트 가입도 확정됐다.
이집트는 이처럼 잠재력이 크지만 현재 경제 사정이 나아질 때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2022년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발생 이후 이집트 환율은 2022년 대비 2023년 8월 현재 약 두
배 상승했다. 2023년 7월 도시 인플레이션율도 36.5%를 기록했다. 식품, 생활용품 등의 물가가 빠른 속도로 올라 서민들의 삶이 다소 어려워졌다. 기업 여건도 당장은 녹록지 않은 게 사실이다. 7월 이후부터 8월까지 전력 절감과 노후화된 전선 정비를 위해 매일 일정한 시간대에 이집트 일부 지역에서 정전이 발생한다. 현재의 대내외적 경제 사정으로 이집트는 사막 한가운데에 섰다고 볼 수 있다.
이집트에선 1964년 소련과 장기 무역 및 원조 협정을 체결한 뒤 중공업이 본격적으로 발전했다. 이집트 헬완 철강단지의 한 주철공장에서 작업하는 노동자. REUTERS
그럼에도 이집트는 강한 나라다. 긴 역사 속에 일궈낸 나일강 문명, 피라미드, 수에즈운하 등의 기반이 있다. 이집트 내부에는 많은 자원이 있고, 외부에는 많은 친구가 있다. 국내외적 정세와 경제적 여건으로 한 번씩 경기침체를 겪으나, 전성기에는 연간 약 5%의 경제성장률을 보여왔다. 우리나라도 마이너스 성장을 했던 2020년에 이집트는 3.6%의 플러스 성장을 기록했다. 또한 이집트 인구는 약 1억1천만 명으로 중동 국가 중 인력이 매우 풍부한 시장이다. 사회기반시설 구축 수요가 늘고 있으며, 제조업 투자 유치와 수출 장려 정책을 추진 중이다. 유럽연합, 튀르키예, 아프리카 등 다수 국가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다. 기술이전
과 인력양성에 관한 정부 의지가 강화하는 점도 이집트의 사업 매력 포인트다.
기술이전·인력양성 의지 강해
한강의 기적을 이룬 우리나라도 이러한 이집트의 매력 포인트에 힘입어 원전, 철도, 선박, 방위산업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전자기기·섬유·석유화학 등의 분야에는 누적 기준 약 8억달러(약 1조원) 규모의 투자로 활발히 진출했다. 2022년 두 나라의 연간 교역 규모는 약 32억달러를 기록했다. 이집트 경제가 회복됐을 때, 우리나라와 이집트의 경제협력은 더 강화될 것이다. 이에 더해 한국과 이집트 간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된다면 무역·투자 등 상호호혜적 경제 교류가 더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허유진 KOTRA 카이로무역관 차장 youjinhuh@kotra.or.kr
기원전 2550년께 세워진 이집트의 기자피라미드는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다. REUT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