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국회에서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심사소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 들어 ‘건전재정’ 기조가 이어지면서 국회 예산 심사 풍경도 이전과 사뭇 달라지고 있다. 과거 야당은 국정운영 철학을 달리하는 정부의 국정과제 예산을 칼질하는 데 주력하곤 했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선 정반대로 정부가 칼질한 예산을 야당이 되살리거나 증액하는 데 무게를 싣는 양상이다.
16일 여야는 정부가 제출한 657조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상임위원회별 예산소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위원회 회의를 이어갔다. 앞서 몇몇 상임위에서 이미 야당이 일부 예산을 증액하거나 새로 편성해 단독 의결한 상황에서, 이날도 여야 간 팽팽한 신경전이 이어졌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 13일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에서 새만금지구 개발사업 관련 농생명 용지조성 등 새만금 관련 예산 2902억원을 증액한 데 이어, 15일에는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새만금∼전주 고속도로 등 새만금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1472억원 늘렸다.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선 연구개발(R&D) 예산을 2조원 증액했고, 방송통신위원회 예산안에서 한국방송(KBS)과 한국교육방송(EBS) 프로그램 제작지원 예산 등을 278억원 추가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정부 예산안에서 0원으로 편성한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예산은 지난 10일 행정안전위원회에서 민주당 주도로 7053억원으로 증액됐다.
통상 야당은 매년 다음연도 예산안을 심사할 때 ‘칼질’을 벼른다. 정부·여당 견제에서 국정과제 예산을 줄이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때는 당시 야당인 국민의힘이 한국판 뉴딜정책, 지역화폐, 일자리정책 예산 등을 중심으로 매년 10∼20조원 가까운 감액 목표를 내세우고 정부·여당과 충돌했다. 박근혜 정부 때는 당시 야당인 민주당이 이른바 ‘최순실’ 예산, 창조경제 예산, ‘사자방’(4대강·자원외교·방위산업) 예산 삭감에 나서기도 했다.
올해와 지난해 야당의 예산심사 태세가 달라진 것은 일차적으론 정부의 예산편성 기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기재부는 세수 급감과 경기 둔화에도 재정지출 확대를 위한 국채발행 불가 기조를 고수하며 2년 연속 짠물 예산안을 편성했다. 이런 가운데 야당이 예산 삭감을 통해 정부에 견제구를 날릴 만한 ‘윤석열 표’ 재정사업이 없다는 점도 달라진 예산안 심사 풍경의 이유라는 말이 나온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국회로 예산안이 넘어오면 어디를 얼마나 잘라낼까 들여다보는 데 시간을 많이 썼는데, 윤석열 정부 들어선 그럴 예산조차 마땅하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야당 주도로 예산안을 증액하더라도 헌법에 따라 예산 증액과 신규 편성엔 최종적으로 정부 동의가 필요하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4일 “정부가 예산을 냈기 때문에, 총량을 늘리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정부·여당도 최대 쟁점인 연구개발 예산은 보완 방침을 밝힌데다, 내년 총선을 앞둔 만큼 야당과 정치적 타협에 나설 거란 관측도 나온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