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전산학 박사’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명예교수는 지난 26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행정망 먹통’ 사고 대응을 강하게 비판했다. 문송천 제공
“행정안전부가 국가 재난 사태에도 행정망 전체 지도조차 갖고 있지 않다 보니 복구에도 며칠이 걸리고 앞뒤가 맞지 않는 어리숙한 해명을 내놓는 겁니다.”
일주일 사이 네번의 정부 행정망 먹통 사고가 발생한 뒤인 지난 26일, 한겨레 전화를 받은 문송천(70)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경영대학원 명예교수는 거침이 없었다. 문 교수는 최근까지도 대구광역시 행정데이터맵 구축 자문을 맡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는 ‘현역’ 전문가다. 그는 1981년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전산학 박사 학위를 딴 뒤 24살부터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카이스트 등에서 교수로 재직해왔다. ‘전산학 박사 국내 1호’란 타이틀을 갖고 있다.
문 교수는 우선 행안부가 행정망 먹통 원인을 라우터(L3) 포트 불량에서 찾은 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정보시스템 가장 아랫단에 장비(하드웨어)가, 그 위에 소프트웨어, 그 안에 데이터가 있다. 정보시스템에 문제가 터지면 80%가 데이터 문제”라며 “(데이터는) 들여다보지도 않은 행안부 발표는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태는 소프트웨어, 특히 데이터 문제일 가능성이 크므로 (정부가) 전면 재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 교수는 행안부의 접근 방식을 전국 지도도 없이 차 사고 지점을 찾는 상황에 비유했다. 그는 “전국 통합 지도를 갖고 있지 못하다 보니 차 대형 사고로 도로가 막혀도 어느 곳에서 (사고가) 났는지 모르고 있다”며 “현재 국가 행정망은 서로 다른 업체가 서로 다른 시기에 만든 1400개 시스템이 통합 데이터 지도 없이 각자 돌아가다 보니 중복되고 누더기 상태로 방치된 데이터가 혼재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름, 주소 등 행안부 데이터 항목이 2만개 정도인데 현재 행정망에는 700만종 이상의 데이터로 엉켜 있고 이 때문에 여러 프로그램들이 데이터를 찾아가다 오류가 발생해 잘못된 답변, 지연, 시스템 장애 등을 유발하고 있다”며 “거의 쓰레기장 수준이라 언제 다시 사고가 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 교수는 “문제 부위를 찾았다 해도 근본적으로 고치는 게 아니라 임시·응급 땜질 처방을 하니 잠복한 시한폭탄이 언제 또 다른 부위에서 돌연 터져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지난 17일 행정망 먹통 사태 이후 조달청·조폐공사·사이버경찰청 등의 전산망이 연이어 장애를 일으키고 있는 상황에 대한 그의 시각이다.
여당과 정부 쪽에서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의 대기업 참여 제한’ 완화를 해결책처럼 제시하고 있는 상황도 문 교수의 비판을 피해 가지 못했다. 그는 “행정망 운용 기관들이 각 시스템 개발의 주요 내용도 모른 채 유지보수 업체를 1년 단위로 선정해 프로그램이 잘 돌아가게만 맡아달라고 하는 게 현 시스템이다. 이런 구조에서 대기업이 참여한다고 한들 달라지는 게 있을까 싶다. (정부가) 본질적인 대책은 고민하지 않고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