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인 지난달 26일 저녁,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배우 이정재씨가 서울 서초구의 한 식당에서 만나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서울 현대고 1989년 입학 동기인 두 사람은 식사를 마치고 나가면서 이씨 팬들의 요청에 응해 사진도 찍고 사인도 해줬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진과 함께 목격담이 올라왔고, 뉴스 미디어들은 이를 보도했다.
이튿날인 27일 월요일, 주식시장이 열리자 대상홀딩스의 주가가 전 주말 종가(6940원)보다 9.94% 급등해 거래를 시작해 10시45분 가격제한 폭(29.97%, 9020원)까지 치솟았다. 다음날에도 상한가까지 올랐다가 25.2% 상승한 1만129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후 5거래일간 큰 폭으로 출렁거리며 조금 밀리는 듯하더니, 12월6일 또 한번 상한가까지 치솟았다. 8일엔 단기과열종목으로 지정돼 30분 단위로 거래가 체결되면서 8.4% 떨어졌지만 이날 종가까지 상승률은 91.6%에 이른다. 2513억원이던 시가총액은 4816억원으로 2303억원 불어났다.
상장주식 수가 91만여주로 보통주(3621만여주)의 2.75%밖에 안 되는 대상홀딩스 우선주는 주가 급등으로 거래정지를 당한 기간을 빼고, 12월6일까지 7거래일 연속 상한가로 뛰었다. 7670원이던 주가는 8일 5만1700원까지 뛰어, 상승률이 574%에 이른다.
이번 급등 이전, 대상홀딩스 주가는 오랜 하락세를 이어왔다. 2015년 5월15일 2만9300원에서 떨어지기 시작해 코로나 대유행 초기의 경제위기 때인 2020년 3월27일 3230원까지 떨어졌다. ‘코로나 유동성’이 주가를 끌어올리자 대상홀딩스도 5월에 1만3천원을 잠시 넘겼지만 다시 하락세를 이어가며 6천원대로 추락했다. 최근 3년간 대상홀딩스에 대한 분석 보고서를 낸 증권 분석가는 한명도 없다. 지난해 주당 순이익이 647원에 그칠 정도로 실적이 변변치 않았기 때문이다. 올해도 3분기까지 누적 순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17% 줄어든 상태다. 그러나 한동훈-이정재 만남 이후 주가가 폭등하고 있다. 그날 이전 한달간 하루 평균 5만여건에 불과하던 거래량도 1300만건으로 폭증했다. 주가 급등을 설명하려는 주식 보유자들은 이런 근거를 댄다.
“한동훈 장관과 이정재는 오랜 친구 사이다. 대상그룹 지주회사인 대상홀딩스는 이정재의 오랜 연인인 임세령 부회장이 지분 738만주(20.41%)를 보유한 2대 주주다. 그뿐만 아니다. 대상홀딩스 양동운 사외이사는 한 장관과 서울대 법대 동문이고, 임창규(김앤장 고문) 사외이사는 한 장관 배우자인 진은정 미국 변호사의 직장 동료다.”
‘가치투자’를 중시하는 투자자들은 시니컬하게 묻는다.
“그래서? 그게 대상홀딩스 실적이나 주식 가치에 무슨 영향을 미친다는 거야?”
유력 정치인이 정치적으로 부상할 때, 그 사람과 관련 있는 기업의 주가가 큰 폭으로 오르는 일이 한국 증시에선 흔히 일어난다. 경제와 기업에 미치는 정치권력의 막강한 영향력, 인간관계에 의해 굴절되는 정책 결정이나 정보의 비대칭성이 그런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만드는 배경이다. ‘한동훈 테마주’로는 대상홀딩스와 함께, 대표이사와 사외이사 1명이 서울대 법대 출신인 덕성이 꼽힌다. 덕성 주가는 올해 11월21일 5150원에서 다음날 상한가를 기록하며 상승을 시작해 11월28일 1만250원까지 뛰었다. 덕성은 지난 20대 대선 때는 ‘서울법대 출신 윤석열’ 관련주로 꼽혀 주가가 급등했던 회사다. 대상홀딩스와 덕성은 한국거래소의 조회공시 요구에 “과거 및 현재 당사의 사업 내용과 관련이 없음을 알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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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테마주를 비롯한 테마주는 증권 관련 방송과 리딩방(유사 투자자문 업체) 등에서 유료 회원을 상대로 매수 추천을 하면서 형성된다는 게 증권가의 분석이다. 정치 테마주는 한번 주도주가 형성되면 온갖 동향(지연), 동문(학연), 동성동본(혈연) 등 ‘인연’이 거론되고, 때론 와전된 이야기조차 주가를 흔드는 재료가 된다. 2021년 초 크라운제과는 윤영달 회장이 대선 후보로 유력해지던 윤석열 검찰총장과 같은 파평 윤씨라는 소문이 퍼지며 이틀 만에 주가가 60%나 뛴 적이 있다. 윤 회장은 실은 해남 윤씨라고 한다.
오랜 역사를 가진 대표적인 정치 테마주로 안철수 의원(국민의힘)이 대주주인 안랩을 꼽을 수 있다. 서울대 융합과학대학원장이던 안철수씨의 서울시장 출마설이 돌기 시작한 2011년 8월, 2만원 언저리에 있던 주가가 6개월 만에 16만7200원까지 폭등한 적이 있다. 두번째 대선 도전을 앞두고 있던 2017년 초에는 6만원대에서 14만9천원까지 올랐다. 국민의당 대표를 맡고 있던 2021년 11월1일, 20대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을 때는 13.5%나 급락(종가 7만1300원)하기도 했다. 이런 급등락이 있었지만, 안랩 주가의 장기적 흐름은 영업이익을 따라갔다. 올해는 내내 평온했고, 12월8일 종가는 7만2800원이다.
정치 테마주는 정치 이벤트가 끝나고 나면 주가가 제자리로 돌아간다. 대표이사가 서울대 법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2021년 8월 6천원대에서 11월 1만9900원까지 오른 대표적인 ‘윤석열 테마주’ 신원종합개발은 대선 직후 잠깐 반등한 뒤 계속 하락해 지금은 3천원대에 거래된다. 자본시장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2017년 19대 대선 때는 테마주가 상승하면 “처음엔 신용융자 잔고가 늘어나다가 이후 공매도 잔고가 늘어나” 공매도가 추가 상승을 억누르는 구실을 했다. 그러나 2022년 20대 대선 때는 공매도가 금지돼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테마주가 창궐하기 좋은 환경이다.
대상홀딩스 주가가 상한가로 오른 11월27일 ‘상한가 따라잡기’를 했다는 한 개인투자자는 “개미들도 정치 테마주 급등이 순간의 거품인 걸 모르는 게 아니다. 단지 그런 변동성을 투자 기회로 삼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도박’인 걸 알고 하는 것이니, ‘위험하다는 충고 같은 건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테마주의 창궐은 마지막에 주가 급락으로 손실을 보는 사람들을 대거 양산해낸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다.
자본시장연구원은 2017년 6월 발표한 ‘대통령 선거 국면의 정치테마주 특징과 시사점’이란 보고서에서 16~19대 대통령 선거에서 유력 후보 9명과 관련된 정치 테마주 107개를 분석한 결과, 비정상적 가격 급등을 보인 정치 테마주가 16대 대선에선 14개, 17대엔 10개, 18대엔 21개, 19대엔 25개로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밝혔다. 코로나 대유행 이후 이른바 ‘동학개미 운동’이 퍼지며 개인투자자들의 직접투자가 크게 늘어난 이후 테마주 주목도는 한층 높아졌다. ‘코인’ 거래하듯 주식을 사고파는 투기적 거래의 확산은 한국 증시가 ‘장기 산업자금의 조달, 투자 수단의 제공, 자본소득의 분산’이라는 고유 기능으로부터 점차 멀어지고 있는 것 아닌지 우려를 키우고 있다.
논설위원 jeje@hani.co.kr
한겨레 경제부장, 도쿄특파원을 역임했다. ‘통계가 전하는 거짓말’ 등의 책을 썼다. 라디오와 티브이에서 오래 경제 해설을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