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록 로비파문’ 확산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글로비스가 2001년부터 최근까지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현대차가 2002년 대선 불법자금 수사의 ‘교훈’을 벌써 잊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대차의 불법 대선자금 전달 혐의가 드러난 것은 2003년 11월이었다. 당시 검찰은 현대캐피탈 사무실 압수수색을 통해 현대차가 100억원의 불법 대선자금을 한나라당에 전달한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정몽구 회장을 비밀리에 시내 호텔로 불러 강도 높은 조사를 한 뒤 80억원은 정몽구 회장이 관리하던 정주영 명예회장의 유산으로, 20억원은 현대캐피탈을 통해 조성된 비자금인 것으로 ‘정리’했다. 그룹 총수가 대선자금 전달을 지시했다는 개연성이 높았지만 검찰은 “부회장이 돈을 주고 사후에 정몽구 회장에게 보고만 했다”며 김동진 총괄부회장만 기소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 재벌 총수들은 처벌하지 않기로 한 검찰의 ‘일괄선처 방침’만 없었다면 정 회장은 형사처벌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김재록씨 로비 의혹 사건 수사 과정에서 현대차가 대선자금 수사에도 불구하고 비자금 조성을 계속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정몽구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사장으로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설립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글로비스는 2001년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국내외 거래업체로부터 대금을 돌려받는 방식으로 397차례에 걸쳐 모두 69억8천여만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압수물 분석 과정에서 추가 비자금 단서를 잡은 것으로 알려져 글로비스를 통해 조성된 비자금은 100억원대 이상일 것으로 추측된다. “정경유착 근절과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역사적 전기가 됐다”는 대선자금 수사가 적어도 현대차에는 아무런 교훈을 주지 못한 것이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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