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올해 은행 정기평가에서 기업 231곳이 부실 징후를 띤다는 판단을 받았다. 두 해 연속 숫자가 늘어난 데다 증가세도 가팔라졌다. 고금리의 여파가 본격화하면서 빚을 갚지 못하는 기업들이 늘어난 것이다. 특히 부동산 업계에서 울리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채권은행들의 올해 정기 신용위험평가 결과를 18일 발표했다. 은행은 매년 돈을 빌려 간 기업들을 평가해 외부자금의 투입 없이는 돈을 갚기 힘들어 보이는 ‘부실징후기업’(C∼D등급)을 선정한다. 부실징후기업은 채권단의 자율적 구조조정(워크아웃)에 해당하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상 공동관리절차 등을 신청할 수 있다. 다만 이들 기업 중에서 정상화 가능성이 낮아 D등급으로 분류된 곳은 공동관리절차 신청을 거절당하고 법원 회생절차를 밟게 될 가능성이 높다.
올해 부실징후기업은 231곳으로 지난해보다 25%(46곳) 불어났다. 지난해에 16% 늘어난 것보다 증가세가 더 가팔라졌다. 코로나19 대유행 때인 2020∼2021년에 감소 추세를 보였던 것과 대비된다. 대기업이 2곳에서 9곳으로 뛰었고, 중소기업도 183곳에서 222곳으로 늘었다. 신용위험평가 때는 금융권에서 신용공여를 받은 금액이 500억원 이상이면 대기업으로 본다. 정상화 가능성이 높은 C등급은 118곳, 그렇지 않은 D등급은 113곳이었다.
부실징후기업의 급증은 경기 부진과 고금리가 동시에 덮친 영향으로 풀이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국내외 경기가 둔화하고 원가 부담도 커지면서 기업들의 수익성이 나빠진 것이다. 특히 지난해 시작된 주요국 통화 긴축의 영향이 올해 들어 본격화하면서 각종 금융비용 상승에 따른 부담까지 얹어졌다. 실제로 국내 은행의 기업대출 연체율은 지난 9월 말 0.42%로 1년 전보다 0.19%포인트 높아진 바 있다.
올해 부실징후기업 중에서는 부동산업의 비중이 가장 컸다. 전체 231곳 중 9.5%(22곳)가 부동산업에 속했다. 고금리와 경기 둔화의 누적된 효과가 부동산 경기 위축으로 이어지면서 1년 전보다 7곳 늘어난 것이다. 여기에 별도로 분류된 건설사까지 포함하면 숫자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다음으로는 도매·상품중개(19곳), 기계·장비, 고무·플라스틱, 금속가공업(각 18곳)이 많았다.
시장에서도 부동산 업계의 구조조정을 향한 경계심이 확산하고 있다. 최근 유동성 상황이 나빠져 구조조정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소문에 휘말린 태영건설이 대표적이다. 태영건설은 이를 곧바로 부인했으나, 올해 3분기 말 기준으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발채무가 자기자본의 3배를 넘는 3조5천억원에 이르는 데다 비수도권에 있는 미착공 사업장이 많아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절차 등이 마무리되면 태영그룹 자금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당국은 시장 심리가 더 나빠지지 않도록 부실징후기업의 빠른 구조조정을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부실징후기업들이 당장 금융권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부실징후기업이 금융권에서 받은 신용공여 잔액은 지난 9월 말 2조7천억원 수준에 그친다. 부실징후기업 선정에 따라 은행들이 추가로 쌓는 충당금도 3500억원 정도에 불과할 전망이다.
이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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