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1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플랫폼 독과점 폐해를 줄일 수 있는 플랫폼 경쟁촉진법 제정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구글은 자사와 거래하는 모바일 게임 회사들이 다른 앱마켓에 입점하는 것을 막았다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 421억원을 지난 4월 부과받았다. 이미 구글이 국내 앱마켓 점유율을 90%까지 끌어올린 뒤였다. 공정위가 2018년 조사를 시작해 2023년 결론을 내는 동안 빠르게 지배력을 확대한 것이다. 공정위 한 조사관은 “플랫폼 기업 조사는 워라밸을 지키면 5년, 밤낮없이 일하면 2년 걸린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가칭)이 시행되면 독과점 지위에 있는 플랫폼 조사 속도가 2배가량 빨라질 것으로 본다. 사전지정 및 증명책임 전환에 따른 효과다. 지배적 사업자 여부를 미리 따져 정해두는데다가 시장 지배적 사업자인지를 입증하는 책임이 공정위에서 사업자로 넘어간다. 조홍선 공정위 부위원장은 “플랫폼 서비스는 새로운 영역이고 융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터라 시장 획정과 경쟁 제한성을 판단하는 데 굉장히 오래 걸린다”고 말했다.
다만 공정위는 아이티(IT)·플랫폼 업계의 반발을 의식한 듯 지배적 사업자 지정 기준과 금지 행위의 범위를 최소화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관련 업계는 사전에 규제 대상을 지정하는 방식에 대해 혁신을 저해하는 방식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날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플랫폼 시장을 좌우할 정도로 힘이 큰 소수 핵심 플랫폼 사업자”를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하겠다고 말했다. 네이버·쿠팡·배달의민족 등 누구나 동의할 만한 플랫폼을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공정위는 이날 구체적인 지정 기준을 발표하지는 않았다. 다만 매출, 이용자 수 등 정량지표와 함께 시장 구조나 진입장벽 등의 분석·판단이 필요한 부분도 고려해 지배적 사업자를 지정한다는 방향성은 공개했다. 지정 전 의견제출, 이의제기, 행정 소송 등 플랫폼 기업에 변론 기회도 충분하게 보장하기로 했다.
지배적 사업자를 지정할 때 여러 분야를 나눠 지정하겠다고도 언급했다. 예컨대 네이버는 쇼핑·검색·동영상서비스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쇼핑 분야에서는 지배적 사업자가 되더라도 동영상서비스 부분에서는 지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날 공정위가 플랫폼 독과점 사업자를 별도법으로 규율하겠다고 밝히면서 정부의 입장이 명확하게 서게 됐다. 그간 공정위가 플랫폼 독과점 정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의 이중규제 등 부처 간 이견으로 논란이 일었던 바 있다. 공정위는 법안 세부 내용에 대해 다른 부처 및 국회와 협의한 뒤 입법에 나설 계획이다.
이번 법안은 특정 업종의 독과점 문제에 대해 별도법을 제정하는 첫 사례다. 김남근 변호사(참여연대 정책자문위원장)는 “플랫폼의 특징 자체가 독점화되는 것이고, 그 독점이 미치는 영향력의 범위도 굉장히 넓다. (다른 나라에 비해) 늦었지만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말했다. 이미 유럽연합·독일은 디지털 시장법 등 같은 취지의 법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미국 경쟁 당국도 아마존 등 미국 대형 플랫폼 기업에 반독점 소송을 제기해 견제에 나섰다.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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