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준공 후 30년이 지난 아파트는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재건축 패스트트랙’ 구상을 내놓은 가운데 서울지역 아파트 4채 중 1채는 준공 30년을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계획대로 재건축 절차를 바꾸는 제도 개선이 이뤄지면 재건축 대상 주택 수가 많이 늘어나는 효과를 볼 수 있어, 여권은 이를 ‘총선용’ 부동산 정책으로 내세울 전망이다. 그러나 최근 재건축 사업은 안전진단 등 절차보다는 조합원 분담금을 줄일 수 있는 ‘사업성’이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최대 변수로 떠오른 게 현실이다.
14일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R114’ 조사를 보면, 전국의 아파트 총 1232만가구 중 1월 현재 준공된 지 30년을 넘어선 단지의 아파트는 262만가구로 21.2%를 차지한다. 수도권에는 준공 후 30년을 넘긴 단지가 서울(50만3천가구), 경기(52만2천가구), 인천(19만9천가구) 등 47%가 몰려있다. 서울은 아파트 총 182만7천가구 27.5%가 준공 30년이 지났다. 노원구(59%·9만6천가구), 도봉구(57%·3만6천가구)에서 30년 경과 비중이 컸고, 강남구(39%·5만5천가구)와 양천구(37%·3만4천가구)가 뒤를 이었다.
경기에선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을 적용받을 수 있는 1기 신도시 외에는 광명(41%·3만2천가구), 안산(34%·4만1천가구), 수원(13.6%·4만1천가구), 평택(12.9%·2만1천가구)에 30년을 넘긴 아파트가 많다. 여권이 이번 총선의 승부처로 보는 서울·경기권 지역에 30년 이상 노후 아파트 단지가 집중적으로 포진해 있는 셈이다.
정부는 다음달 ‘재건축 패스트트랙’ 도입을 위한 도시및주거환정비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인데, 법안 통과를 위해선 야당의 협조가 필요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의 재건축 규제 완화책 발표 직후 “막무가내식 규제 완화는 집값을 띄울 뿐 아니라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도시정비법 취지에 위배된다”는 논평을 냈다. 그러나 지난해 말 분당·일산 등 1기 신도시의 체계적인 재건축을 위한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민주당이 신도시 외 지역의 재건축 패스트트랙을 명시적으로 반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그럼에도 시장에선 재건축 패스트트랙 효과는 제한적일 것으로 평가한다. 30년 이상 된 아파트에 대해선 안전진단을 사업시행 인가 전까지 받도록 하고 진단 심사 문턱도 낮춰 사실상 면제해도 사업성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조합원들의 부담금 문제로 내부 갈등이 커져 사업의 진척이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는 분담금이 가구당 5억원대로 추산되자 최근 시공사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또 30년 이상 된 노후 아파트 단지는 집주인보다 세입자 거주 비율이 높은 편이어서, 총선에서는 되레 마구잡이 재건축 추진에 반대하는 여론이 표심으로 분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있다. 최민섭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교수(부동산학과)는 “90년대 이후 지어져 용적률이 높은 노후 중·고층 아파트는 재건축해도 주택 순증 효과가 작아 공급 확대보다는 주거환경 개선에 의미를 둬야 하고, 그곳에 사는 세입자 주거안정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면서 “사업성을 높여주는 대신 세입자에게도 임대주택 재입주 혜택을 주는 등 재건축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근본적 고민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최종훈 기자 cjh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