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들이 납품업체들로부터 대규모 인력을 차출해 사실상 공짜로 판매사원을 이용하고 있다. 사진은 한 대형마트 매장에서 제조업체 파견 직원들이 소비자들을 상대로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는 모습이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파견직원이 판매·정리까지
[유통권력-상] 제조업체 눈물을 팝니다
한 외국계 제조업체 영업 담당인 ㄱ씨는 얼마 전 외국인 사장이 새로 부임하면서 한차례 홍역을 치렀다. 이마트의 한 매장을 둘러보던 사장이 자사 제품 진열대를 지키는 판매 사원을 보고 의아해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자사에서 파견된 사원’이라는 설명을 들은 사장은 “물건도 싸게 납품하는 대형마트에 왜 판매사원까지 보내 인건비를 낭비하는가”라며 당장 철수하라는 엄명을 내렸다. ㄱ씨는 “신임 사장이 올 때마다 겪는 통과의례”라며 “사람을 빼고 나면 여지없이 진열대 위치가 뒤로 밀리고 매출이 줄어들어 다시 파견사원을 내보내는 일이 새 사장 부임 때마다 반복된다”고 말했다. 매장 인원 절반이 ‘공짜 직원’=국내 대형마트에서는 언제부턴가 제조업체로부터 판매사원을 지원받아 인건비를 줄이는 게 관행으로 굳어져 있다. 대형마트로서야 인건비를 줄이고 매출에 따른 수수료 수입도 늘어나는 이득을 보지만, 그 부담을 고스란히 납품업체가 떠안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한겨레>가 조사한 결과 납품업체들은 회사에 따라 사정이 다르지만 적게는 수백명에서 많게는 2천명 넘게 파견사원을 운용하고 있다. 또 1위 브랜드가 아닌 2~3위 업체일수록 생산·사무직보다 오히려 파견사원이 더 많은 기형적 구조를 띠고 있다. 납품업체 사이에선 “제조업체인지 유통업체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는 한탄마저 나온다. 이 때문에 대형마트들은 매장 인원의 절반 이상을 파견사원으로 채워 공짜로 운용하고 있다. 실제로 이마트 은평점의 경우 매장 직원 600명 중 300명 정도가 납품업체 파견사원이다.
홈플러스나 롯데마트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매장당 평균 250명 정도 파견사원을 쓰고 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매장 판매사원의 절반 가량이 납품업체 파견사원”이라고 말했다. 파견사원들은 판매는 기본이고 진열대 관리와 재고 관리까지 사실상 장사를 대신해주고 있다. 대형마트가 관리 직원과 계산원(캐셔), 일부 용역·아르바이트생 고용만으로 1천평이 넘는 매장을 운영할 수 있는 것도 이들 덕분이다. 파견 경쟁 부추기는 대형마트=이런 불합리한 구조는 가격 결정권이 제조업체에서 유통업체로 완전히 넘어갔기 때문이다. 한 납품업체 임원은 “1993년 이마트 창동점이 생긴 뒤 3년 만에 제조업계는 가격 결정권을 상실했다”며 “판로가 대형마트로 제한되면서 5년여 전부터는 업체 의사와 상관없이 판매사원을 고정적으로 파견하는 게 당연시됐다”고 말했다. 대형마트가 급성장하면서 재래시장과 동네 수퍼 등의 판로가 급격히 무너진 것도 제조업체의 대형마트 종속을 심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중소 납품업체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인력을 줄여야 할 때도 사무·생산직을 감축할 망정 파견사원 감축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민성식 한국식품공업협회 산업기획과장은 “사정이 이렇다보니 요즘에는 1등 브랜드들도 대형마트의 눈치를 보면서 파견사원을 보내고 있다”며 “대형마트들이 교묘하게 납품업체들의 파견 경쟁을 과열시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파견사원 배치는 단순히 납품업체들의 경쟁 때문만이 아니다. 대형마트 쪽에서 행사에 필요하다고 보내달라고 하면 안 보내줄 방법이 없다. 납품업체가 매장에서 파견사원을 빼면 당장 물건 위치가 뒷편으로 밀려나고 진열대 규모도 축소된다. 심지어는 물건을 아예 빼버리는 경우도 있다. 물론 반대 사례도 있다. 한 납품업체 관계자는 “파견사원을 보내는 조건으로 납품이 성사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납품업체 사원들은 일상적으로 대형마트 매장에 상주하면서 노력봉사를 하게 된다. 한 납품업체 관계자는 “대형마트의 인력 파견 요청을 거절할 수 있는 품목은 신라면 정도뿐”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한 납품업체 임원은 “사원 파견으로 매출이 늘면 대형마트 쪽에서 어김없이 수수료를 높이거나 추가 할인을 요구하기 때문에 파견사원 때문에 매출이 늘어도 실질적인 이득은 별로 없다”며 “만약 동시에 파견사원을 뺀다면 이에 동의하지 않을 납품업체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소비, 충동구매…소비자도 손해=이런 상황은 소비자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 일단 파견사원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만큼 원가가 올라간다. 또 판매사원이 권유하게 되면 충동 구매와 과소비가 늘어나고, 실제 시장 점유율에 따른 상품 구성이 이뤄지지 않아 소비자의 선택권도 제약을 받는다. 외국에서는 이런 이유 때문에 납품업체 파견사원을 받지 않는다. 다만 신상품이 출시됐을 때 소개하거나 시식을 돕기 위해 극소수를 파견받지만 구매 권유는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민성식 식품공업협회 과장은 “소비자들이 잘 아는 라면이나 두부 매장까지 파견사원이 동원돼 북적댈 이유가 없다”며 “더구나 이 때문에 값이 오르고 과소비가 조장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조성곤 윤영미 기자 csk@hani.co.kr
| |
한 외국계 제조업체 영업 담당인 ㄱ씨는 얼마 전 외국인 사장이 새로 부임하면서 한차례 홍역을 치렀다. 이마트의 한 매장을 둘러보던 사장이 자사 제품 진열대를 지키는 판매 사원을 보고 의아해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자사에서 파견된 사원’이라는 설명을 들은 사장은 “물건도 싸게 납품하는 대형마트에 왜 판매사원까지 보내 인건비를 낭비하는가”라며 당장 철수하라는 엄명을 내렸다. ㄱ씨는 “신임 사장이 올 때마다 겪는 통과의례”라며 “사람을 빼고 나면 여지없이 진열대 위치가 뒤로 밀리고 매출이 줄어들어 다시 파견사원을 내보내는 일이 새 사장 부임 때마다 반복된다”고 말했다. 매장 인원 절반이 ‘공짜 직원’=국내 대형마트에서는 언제부턴가 제조업체로부터 판매사원을 지원받아 인건비를 줄이는 게 관행으로 굳어져 있다. 대형마트로서야 인건비를 줄이고 매출에 따른 수수료 수입도 늘어나는 이득을 보지만, 그 부담을 고스란히 납품업체가 떠안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한겨레>가 조사한 결과 납품업체들은 회사에 따라 사정이 다르지만 적게는 수백명에서 많게는 2천명 넘게 파견사원을 운용하고 있다. 또 1위 브랜드가 아닌 2~3위 업체일수록 생산·사무직보다 오히려 파견사원이 더 많은 기형적 구조를 띠고 있다. 납품업체 사이에선 “제조업체인지 유통업체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는 한탄마저 나온다. 이 때문에 대형마트들은 매장 인원의 절반 이상을 파견사원으로 채워 공짜로 운용하고 있다. 실제로 이마트 은평점의 경우 매장 직원 600명 중 300명 정도가 납품업체 파견사원이다.
홈플러스나 롯데마트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매장당 평균 250명 정도 파견사원을 쓰고 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매장 판매사원의 절반 가량이 납품업체 파견사원”이라고 말했다. 파견사원들은 판매는 기본이고 진열대 관리와 재고 관리까지 사실상 장사를 대신해주고 있다. 대형마트가 관리 직원과 계산원(캐셔), 일부 용역·아르바이트생 고용만으로 1천평이 넘는 매장을 운영할 수 있는 것도 이들 덕분이다. 파견 경쟁 부추기는 대형마트=이런 불합리한 구조는 가격 결정권이 제조업체에서 유통업체로 완전히 넘어갔기 때문이다. 한 납품업체 임원은 “1993년 이마트 창동점이 생긴 뒤 3년 만에 제조업계는 가격 결정권을 상실했다”며 “판로가 대형마트로 제한되면서 5년여 전부터는 업체 의사와 상관없이 판매사원을 고정적으로 파견하는 게 당연시됐다”고 말했다. 대형마트가 급성장하면서 재래시장과 동네 수퍼 등의 판로가 급격히 무너진 것도 제조업체의 대형마트 종속을 심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중소 납품업체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인력을 줄여야 할 때도 사무·생산직을 감축할 망정 파견사원 감축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민성식 한국식품공업협회 산업기획과장은 “사정이 이렇다보니 요즘에는 1등 브랜드들도 대형마트의 눈치를 보면서 파견사원을 보내고 있다”며 “대형마트들이 교묘하게 납품업체들의 파견 경쟁을 과열시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파견사원 배치는 단순히 납품업체들의 경쟁 때문만이 아니다. 대형마트 쪽에서 행사에 필요하다고 보내달라고 하면 안 보내줄 방법이 없다. 납품업체가 매장에서 파견사원을 빼면 당장 물건 위치가 뒷편으로 밀려나고 진열대 규모도 축소된다. 심지어는 물건을 아예 빼버리는 경우도 있다. 물론 반대 사례도 있다. 한 납품업체 관계자는 “파견사원을 보내는 조건으로 납품이 성사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납품업체 사원들은 일상적으로 대형마트 매장에 상주하면서 노력봉사를 하게 된다. 한 납품업체 관계자는 “대형마트의 인력 파견 요청을 거절할 수 있는 품목은 신라면 정도뿐”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한 납품업체 임원은 “사원 파견으로 매출이 늘면 대형마트 쪽에서 어김없이 수수료를 높이거나 추가 할인을 요구하기 때문에 파견사원 때문에 매출이 늘어도 실질적인 이득은 별로 없다”며 “만약 동시에 파견사원을 뺀다면 이에 동의하지 않을 납품업체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소비, 충동구매…소비자도 손해=이런 상황은 소비자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 일단 파견사원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만큼 원가가 올라간다. 또 판매사원이 권유하게 되면 충동 구매와 과소비가 늘어나고, 실제 시장 점유율에 따른 상품 구성이 이뤄지지 않아 소비자의 선택권도 제약을 받는다. 외국에서는 이런 이유 때문에 납품업체 파견사원을 받지 않는다. 다만 신상품이 출시됐을 때 소개하거나 시식을 돕기 위해 극소수를 파견받지만 구매 권유는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민성식 식품공업협회 과장은 “소비자들이 잘 아는 라면이나 두부 매장까지 파견사원이 동원돼 북적댈 이유가 없다”며 “더구나 이 때문에 값이 오르고 과소비가 조장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조성곤 윤영미 기자 csk@hani.co.kr
| |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