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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동대문시장에서 ‘Made in Korea’가 사라진다

등록 2007-08-14 13:40수정 2007-08-16 20:40

동대문 상권 개요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해서 볼 수 있습니다.)
중국산에 밀리고…베끼기에 발등 찍고
‘Made in Korea’가 사라지는 동대문시장
‘Made in Korea’가 사라지는 동대문시장
동대문 신평화시장 3층 ‘은아패션’에서 일하는 홍금례(50)씨는 사장 부인이면서 미싱사다. 그는 동대문 인근 의류제조공장들이 요즘 어떤지 묻자 “근처 밥집들이 대부분 문을 닫았다”고 짧게 대답했다. 홍씨처럼 가게와 공장을 함께 운영하는 상인들이 요즘 동대문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 값싼 중국산 옷들이 동대문으로 물밀듯 밀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옷 작은 치수는 한국사람 체형에 잘맞아 은아패션에도 요즘 큰 옷 쪽만 생산해 팔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이맘때 하루 평균 40장씩 만들던 여름 남방도 올해엔 30장 정도로 줄였다.

동대문 시장이 갈림길에 서 있다. 1998~2001년 최고의 호황기를 구가하며 ‘동북아의 패션허브’를 꿈꿨던 동대문이 중국산 범람, 디자인의 고유성 실종, 최대 수요처인 지방 재래상권의 붕괴 등의 영향으로 ‘국내 패션의류산업의 구심점’이란 위상도 흔들리고 있다. 소매상가인 두타의 김순기 마케팅부장은 “한때 연간 2조원을 웃돌던 동대문산 의류의 수출규모가 지금은 1조원에도 못미칠 것”이라며 “동대문은 의류를 중심으로 한 패션상품의 기획, 생산, 유통을 아우르는 최고의 클러스터(산업집적지)이지만, 잘못하다간 ‘중국산 유통기지’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전정오 국민은행 동대문패션타운지점장은 “현금을 돌리느라 수시입출금 예금이 많았던 상인들이 최근에는 자산관리 쪽으로 관심이 바뀌었다”면서 “값싼 중국산으로 마진을 유지해 상인들이 부를 축적했지만, 동대문은 점차 성장동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값싼 중국산으로 마진유지” 공장수 줄고 설비규모 축소

구조적 불황의 먹구름=‘장사 안 된다’는 장사꾼 말은 믿을 게 못된다. 그러나 지난달 13일부터 지난 1일까지 <한겨레> 취재진이 상인들을 대상으로 벌인 면접조사 결과를 보면, 동대문의 최대 장점인 ‘패스트 패션’ 시스템이 와해되고 있는 게 확실해 보인다. 패스트 패션이란, 아침에 스케치를 하면 저녁나절에 샘플을 제작하고 대량주문도 2~3일이면 거뜬히 납품해내는 유연·유기적 생산방식을 일컫는데, 중국산 의류들이 밀려들어 온 뒤 국내 제조공장이 영세해지고 인력마저 고령화하면서 이런 시스템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신평화시장 2층 에이치제이의 이병철 사장은 “중국산에 밀려 공장 수와 설비규모가 줄다보니 많은 양을 주문받으면 소화를 못 한다”면서 “현장 아줌마들이 대부분 50대를 넘겨 손이 느려진 탓도 큰데, 이들이 미싱에서 내려오면 그나마 제조업의 맥도 끊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디자인 베끼기도 심각하다. 조사대상 101개 도매점포 중 디자이너를 고용하고 있는 점포는 24개에 불과했다. 단순 모방을 넘어 최소한의 창조적 변용을 할 기반마저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동대문에선 잘되는 디자인을 베끼기 마련”(ㅁ브랜드의 김아무개 이사)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남대문만 해도 옷을 사서 똑같이 찍어내는 ‘샘플따기’가 없는데 동대문에선 최소한의 상도의가 사라졌다”(신평화 2층 o점포의 김아무개 사장)는 평가가 대다수였다.

서울 동대문 시장의 한 원단 도매점포에서 상인과 손님들이 흥정을 하고 있다. 동대문 시장에는 최근 값싼 중국산 원단이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혜민 인턴기자(한동대 국제어문4) watingfordadasi@empal.com
서울 동대문 시장의 한 원단 도매점포에서 상인과 손님들이 흥정을 하고 있다. 동대문 시장에는 최근 값싼 중국산 원단이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혜민 인턴기자(한동대 국제어문4) watingfordadasi@empal.com

중국산은 어떻게 흘러들어오는가=상인들은 중국산 의류들이 △강남과 동대문 주변의 수입 대행업체 △동대문 상인으로 중국 내 공장을 운영하는 이른바 ‘거상’ 집단 △최근 동대문 상권에서 가장 많은 도매물량을 유통시키는 것으로 알려진 청평화상가 등을 통해 유입된다고 밝혔다. 50~60대 여성의류를 파는 김순신(가명)씨는 “홈쇼핑이나 인터넷에 물건을 파는 사람들은 주로 칭다오나 옌타이에서 큰 주문을 내고, 동대문 시장에 나오는 물건은 대부분 광저우에서 나온다”고 밝혔다. 니트류를 중국에서 수입하는 정유석(가명)씨는 “동대문 제품들이 디자인 차별화가 안되는 것은 중국에 널려 있는 옷들을 아무나 가져오기 때문”이라며 “한국에서 반응이 좋으면 너도나도 중국으로 달려간다”고 말했다. 이렇게 들어온 중국산 제품들은 원산지 표시를 떼어버리거나, 아예 한국산으로 ‘라벨갈이’를 하는 경우가 많다.


“잘되는 디자인 모방만연” 창조적 패션 기반마저 위축

딜레마에 빠진 상인들=외환위기 직후 동대문산 의류는 환율급등에 따른 높은 가격경쟁에다 ‘괜찮은 품질’이라는 시장 평가에 힘입어 수출 물량을 크게 늘릴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동대문’을 일종의 글로벌 브랜드로 끌어올리지 못한 상태에서 중국산과의 경쟁에 내몰리면서 ‘샌드위치’ 신세가 된 형국이다. 일부 상인들은 중국산과 가격경쟁을 벌여보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대다수는 ‘흐름을 거스르지는 못한다’는 체념론에 빠져있다. 신평화 시장 2층에서 티셔츠를 파는 오영자(가명)씨는 “일단 내년에는 공임비와 월급만 주고 마진 없이 중국과 싸워볼 생각”이라고 밝혔지만, 같은 상가 4층의 김철우(가명)씨는 “중국산 제품에 수입경비, 운송료, 여러 잡비 등을 합친다고 해도, 국내에서 단가를 최대로 떨어뜨린 옷보다 싼 것이 현실”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박승대 동대문총상인연합회 사무총장은 “중국산 문제를 가격경쟁으로 풀어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서 “품질과 디자인에서 확실한 차별화와 업그레이드가 절박한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임주환, 박현정 기자 eyelid@hani.co.kr

권세욱 인턴기자(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지방 재래시장 붕괴도 중요한 원인”
평화시장 ‘견습공’출신 김영문 패션TV 고문

김영문 패션TV 고문
김영문 패션TV 고문
“동대문은 겉으론 화려하지만 (현재) 생존을 위한 마지막 갈림김에 서 있습니다.”

40년 넘게 동대문과 인연을 맺어온 김영문(57) 패션티브이 고문은 현재 동대문 상황에 대해 이렇게 우려했다. 전남 나주가 고향인 김 고문이 동대문으로 들어온 것은 1960년대 후반 중학교 중퇴 뒤 평화시장 견습공으로 취직하면서부터다. 당시 그는 두살 위인 고 전태일 열사와 동료 노동자들의 모임인 ‘바보회’ 활동을 함께 했다.

“예전 평화시장 1층은 가게였고 2~3층은 다락방 공장이었어요. 점심 때나 화장실 갈 때만 일하는 동료들 얼굴을 볼 수 있었죠. 시장 앞 헌책 파는 데서 공부도 하고 모여 논의도 했어요.”

김 고문은 경기 침체 뿐 아니라 잠재적 위협 요인들이 한꺼번에 나타나 동대문이 위기에 처했다고 분석했다. 많은 점포들이 중국산 값싼 제품들을 팔고 있고 유통 환경도 크게 변했다. 그는 “90년대 후반부터 중국산이 밀물처럼 들어왔다”며 “국내 업체들이 중국 현지에 많이 진출해 기술을 전수하고, 중국 동포들도 한국에 들어왔다 되돌아가 그쪽도 제품 질이 많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국내산이 값싼 중국산과의 경쟁이 힘들어진 까닭이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유통구조의 변화도 동대문이 시름하게 된 한 원인이다. 김 고문은 “예전에 전국의 큰 소매상인들은 대부분 동대문이나 남대문에서 팔 물건들을 가져갔지만 지금은 중국에서 물건을 떼오거나 아예 현지에서 만들어 곧장 유통시킨다”고 전했다. 그는 또 “지방의 재래시장과 동네 옷가게들이 무너진 것도 도매시장의 어려움이 커지게 된 중요한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동대문은 우리 노동운동이 태어난 곳입니다. 80년대 산업화의 밑거름이 된 곳이에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좋은 기술을 가지고 공장에서 일하는데 동대문이 중국산 유통시장으로 전락하는 것은 끔직한 일입니다. 대량생산 물건은 중국에서 들여오더라도, 유행에 민감한 제품들은 국내 제조 능력을 유지하고 자체 디자인 능력을 갖춰야 전체 국내 패션의류산업의 생태계가 건강해집니다.” 박현정 임주환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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