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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단기 고수익 ‘유혹’…제조업체마저 ‘금융화’

등록 2008-09-24 21:22

시장신화의 몰락 ② ‘머니게임’의 함정
시장신화의 몰락 ② ‘머니게임’의 함정
[시장신화의 몰락] ② ‘머니게임’의 함정

‘[98.5×(5년 만기 미 재무부 채권 수익률÷5.78%)-30년 만기 미 재무부 채권 가격]÷100’?

지난 93년 생활용품 전문업체 프록터앤갬블(P&G)이 미국계 투자은행 뱅커스트러스트(99년 도이치뱅크에 인수)와 실제 맺은 2억달러짜리 스왑거래의 내용이다. 98.5와 5.78 따위의 현란한 숫자들을 일러 금융시장의 ‘선수’들은 ‘매혹의 눈’이라 부른다. 함정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속임수란 얘기다. 실제로 위 수식의 승수(레버리지)효과는 17배로, 이 거래는 사실상 5년물 채권 금리가 5.78%, 30년물 채권 가격이 계약 당시 수준을 밑돌 것이라는 데 34억달러를 베팅한 셈이다. 금리가 오르자 뱅커스트러스트는 760만달러를 챙겼지만, 은행 차입비용을 줄여보겠다던 프록터앤갬블 경영진의 소박한 꿈은 산산조각났다.

지난 30년 가까이 세계경제를 주물러온 금융자본주의의 주연배우는 전업 투자은행이다. 이들에게선 고객의 여웃돈을 모아(예금) 제3자에 꿔주고(대출) 이윤을 챙기는 일반적인 은행(상업은행)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머니게임’만이 이들의 존재이유다. 오로지 게임에 이길 최정예 ‘선수’를 뽑기 위해 투자은행들은 신입사원 면접장에서 체스경기를 열기도 했고, 1부터 500까지를 3초 안에 더해보라는 과제를 주기도 했다. 90년대 이후의 사례만 추리더라도, 이들과 ‘금융거래’에서 낭패를 본 상대는 금융권의 수많은 경쟁자에서 시골 마을의 크리스마드카드 제조회사에 이르기까지 무궁무진하다.

이처럼 첨단 금융공학으로 무장한 투자은행들이 앞장서 멍석을 깔자, 뒤이어 증권·보험은 물론 각종 연기금 등 ‘주연급 조연’들도 고수익의 유혹에 사로잡혀 속속 게임판에 뛰어들었다. 장보형 하나금융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투자은행 중심의 금융자본주의 질서는 새 수익모델을 좇아 각종 금융규제를 피할 묘수를 찾던 일반 금융기관의 이해와도 잘 맞아 떨어졌다”며 “이 과정에서 규제·감독 기능 자체가 더욱 빠르게 무력화하는 상승작용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조복현 한밭대 교수(경제학)는 “어느덧 일반기업들마저 수익을 거두기까지 오랜 시일이 걸리는 설비투자보다는 단기 금융거래에 나설 유인이 커졌다”며, “제조업체의 순익 가운데 금융거래 차익 등의 비중이 높아지는 ‘금융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라밖에서는 미국발 금융위기가 투자은행 주도의 금융자본주의 질서에 커다란 균열을 내고 있는데도, 정작 이명박 정부의 시계추는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지난 23일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미국의 금융쇼크는 리스크 관리를 소홀히 한데다 금융당국도 건전성 감독을 느슨하게 해서 생긴 문제”라며 “투자은행 육성은 자본시장 발전과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으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과제”라 말했다. 리스크 관리를 위한 감독 기능은 강화하되, 규제 완화나 투자은행 육성 자체는 강하게 밀어붙이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에 대한 우려도 크다.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경제학)는 “규제완화를 재고하라는 얘기가 모든 금융혁신에 반대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라고 전제한 뒤, “문제는 현 정부가 ‘시스템 리스크’가 있는 금융 부문의 관리·감독 질을 높이려는 모습이 안보인다는 데 있다. 금산분리 완화 등의 규제완화 조처는 오히려 리스크를 더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고삐풀린 금융자본주의에 숨겨진 위험(리스크)는 분명하다. 최근 사태의 뇌관 구실을 한 파생금융상품 ‘크레디트디폴트스왑’(CDS)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단순화한 시디에스 모형이란 결국 ㄱ이 ㄴ에게 돈을 꿔준 뒤 그 돈을 받을 ‘권리’를 ㄷ에게 팔고, 다시 ㄹ,ㅁ,ㅂ…의 손으로 무한정 떠돌아다니는 것으로, 최종적으로 그 권리를 손에 쥔 투자자의 운명은 정작 누군지도 모르는 ㄴ이 돈을 갚을 능력에 달려 있다. 대형 투자꾼들이 벌이는 머니게임 속에서 위험은 결코 죽지 않는다. 다만 떠넘겨질 뿐이다. 그 위험이란 한순간에 경제시스템을 무너뜨리는 ‘폭탄’의 다른 이름이다. 최우성기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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