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신흥국에 첫 달러공급 배경]
중-러간 자국통화 결제 추진 등 달러체제 위협
선진국→신흥국→선진국 ‘위기 악순환’ 차단도
중-러간 자국통화 결제 추진 등 달러체제 위협
선진국→신흥국→선진국 ‘위기 악순환’ 차단도
자국의 급한 불을 끄기 바빴던 미국과, 사실상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통화기금(IMF)이 달러 부족으로 고통을 겪는 신흥시장 국가들을 통화 스와프(교환) 등을 통해 돕겠다고 나섰다. 선진국에서 출발해 신흥시장으로 번지는 금융위기 불길을 차단하겠다는 뜻도 있지만,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흔들리는 지위를 방어하겠다는 계산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29일(현지시각) 사상 처음으로 신흥국인 한국·브라질·멕시코·싱가포르 4개국과 각각 최대 300억달러의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한다고 밝혔다. 때맞춰 국제통화기금도 이날 ‘단기 대출 기구’(SLF)를 통해 신흥국가에 달러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국제통화기금은 약 1천억달러의 자금을 조성해, 달러를 필요로 하는 국가들에 통화기금에 내는 분담금의 최대 다섯 배를 1년 동안 대출해줄 계획이라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30일 전했다. 물론 상환능력과 용이한 자본시장 접근성, 튼튼한 거시경제 정책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터키·아르헨티나·루마니아·불가리아 등이 국제통화기금의 수혜 후보군으로 꼽힌다.
신흥시장은 최근 금융위기로 국외 투자자들이 급속히 빠져나가면서, 환율 급등(통화가치 하락)과 증시 폭락을 겪었다. 전지구적 신용경색으로 선진국 금융기관들이 달러 대출의 문턱을 확 높이는 바람에 밖에서 달러를 빌려오기도 어려워졌다.
이제껏 신흥국들의 줄기찬 요구에도 묵묵부답이었던 미국이 처음으로 신흥국과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고, 국제통화기금도 신흥국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선 데는 몇 가지 해석이 따른다.
우선, 전지구적 금융위기 확산의 방지다. 연준은 성명에서 신흥국과의 통화스와프 계약 체결 배경을 “기초체력이 튼튼하고 경제가 잘 돌아가는 국가에서 미국 달러를 조달하는 데 어려움이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금융위기가 신흥국으로 확산되면서 다시 선진국의 금융과 실물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만큼, 악순환의 고리를 사전에 끊겠다는 뜻이다.
신흥국들의 요구도 쇄도했다. <에이피>(AP) 통신은 국제통화기금에 단기 달러 대출을 요구한 나라가 모두 24개국에 이른다고 전했다. 한국을 비롯한 많은 신흥국들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끼리의 통화스와프에 참여를 지속적으로 요청해 왔다.
흔들리는 달러 체제의 유지도 이번 조처의 배경으로 읽힌다. 금융위기로 미국의 지위가 흔들리는데다, 달러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는 나라들이 잇따라 달러 체제에서 이탈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총리가 28일 만나 달러에 기반을 둔 세계 금융시장을 비판하며, 양국간 거래에 자국통화 결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도 회원국 사이에 달러 대신 자국통화의 사용을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미국으로선 다음달 15일 열리는 주요·선진 20개국(G20) 모임에 앞서, 이같은 새로운 도전을 방어해야 할 형편이다. 김학균 한국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지금의 전지구적 달러 유동성 부족은 기축통화국인 미국이 나서지 않으면 해결이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며 “달러 체제를 지탱하려는 미국의 의도 또한 이번 조처에 반영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금융질서 개편에서 유럽과 중국 등에 주도권을 쥐어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달러 부족에 시달리는 유력 신흥국들에 통화스와프 등을 통해 달러를 공급함으로써, 이들 국가를 달러 체제에 묶어두는 효과를 볼 수 있게 됐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미국으로선 다음달 15일 열리는 주요·선진 20개국(G20) 모임에 앞서, 이같은 새로운 도전을 방어해야 할 형편이다. 김학균 한국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지금의 전지구적 달러 유동성 부족은 기축통화국인 미국이 나서지 않으면 해결이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며 “달러 체제를 지탱하려는 미국의 의도 또한 이번 조처에 반영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금융질서 개편에서 유럽과 중국 등에 주도권을 쥐어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달러 부족에 시달리는 유력 신흥국들에 통화스와프 등을 통해 달러를 공급함으로써, 이들 국가를 달러 체제에 묶어두는 효과를 볼 수 있게 됐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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