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고환율이 수출에 도움이 된다는 발언으로 시장의 불안을 키웠다는 지적을 받았다. 사진은 윤 장관(왼쪽)이 지난 3일 서울 남대문로 한국은행에서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오른쪽)를 만나 대화를 나누는 모습.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열려라 경제] 김광수경제연구소의 진단&전망
미국·일본 등 시행착오 겪은뒤 금산분리원칙 법제화
위기주범 은행 과다대출 감독않은채 규제완화만
미국·일본 등 시행착오 겪은뒤 금산분리원칙 법제화
위기주범 은행 과다대출 감독않은채 규제완화만
최근 외신들의 한국경제 위기론 보도가 늘고 있다. 한국경제 위기의 근거로 외신들은 외환보유고 대비 단기외채 비율과 은행의 예금 대비 대출 비율(예대율)이 높다는 점을 주로 들었다. 기획재정부의 반박에도 불구하고 시중에서는 이른바 ‘3월 위기설’도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미 환율은 1600원을 넘보고 있으며, 주가는 연기금 등의 주가부양에도 불구하고 하락세로 돌고 있고, 내수경기는 급강하를 거듭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언론은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환율 상승을 잘 활용하면 수출확대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한마디로 어처구니가 없다. 그가 취임하자마자 기획재정부는 올해 한국경제 성장률을 -2%로 전망한다고 발표했다. 장관이 바뀌자 기획재정부의 한국경제 상황 인식과 전망이 하루아침에 바뀌어 버린 것이다.
장관이 바뀐다고 해서 기획재정부의 경제전망이 하루아침에 크게 달라진다는 것은 정부 정책이 얼마나 엉터리로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경제부처의 수많은 공무원들과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자들은 오로지 장관의 눈치만을 살피며 장관의 말을 포장하고 지시에 따를 뿐이다.
대통령과 장관들 사이에서도 똑같은 메커니즘이 적용되고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무조건 천재이며 장관들은 그 천재의 지시를 충실히 포장하고 따르면 되는 것이다. 이런 ‘천재-바보 메커니즘’은 대한민국 거의 모든 상하위 직급 공무원들 사이에서 일반화되어 있다. 천재-바보 메커니즘의 근간에는 무슨 일이든 자신이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나쁜 습성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면 대통령이든 장관이든 말단 공무원이든 서로 책임전가 싸움을 하는 것이다.
윤 장관은 노무현 정부 때 금융감독위원장을 역임한 사람이다. 그는 퇴임한 날 자신은 노무현 정부와 코드가 맞지 않았으며 금산분리 완화를 해야 한다고 말해 ‘친기업주의자’임을 밝혔다. 자신을 중용한 노무현 정부의 등에 칼을 꽂고 물러난 셈이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에서 경제수장으로 다시 복귀했다. 마지막 물러나는 날 배신하는 발언으로 후일 이명박 정권에서 복귀할 수 있는 카드를 만들어놓는 행위는 비열하기 그지없다. 사실 이런 일을 잘하는 사람들이 회전문 인사의 공무원 사회에서 출세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금융감독 정책이 잘못되어 미국 등 세계경제가 온통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도 금산분리 완화를 주장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어이가 없을 뿐이다. 금산분리는커녕 다시 금융기관과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할 판에 말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 한국경제 위기의 핵심에 국내 은행들이 있다. 은행들은 예금도 모자라 양도성예금증서(CD)와 은행채, 그리고 단기 외화를 마구잡이로 차입하여 부동산 담보대출을 늘려왔다. 그 결과 외신들의 한국위기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은행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은 이미 이명박 대통령도 인정했다. 그래서 은행장을 비롯하여 모두 연봉을 깎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누가 이처럼 은행들의 황당한 경영을 방치했는가? 바로 윤 장관이 가장 먼저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다. 왜냐하면 은행들의 과다대출은 그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8월부터 2007년 8월까지 3년 동안 금융감독원장을 역임하던 시절에 거의 모두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은행들의 과다대출과 경영건전성에 대한 감독 책임은 금융감독원장에게 있다. 이처럼 엉터리 짓을 해놓은 사람이 금산분리 완화니 친기업론자니 운운하는 것 자체가 가소로운 일이다.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도리어 큰소리치고 있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그는 한 나라의 경제를 책임지는 장관이 되어서는 안 될 사람이다.
금융업은 재벌이든 고리대금업자든 돈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그 이유는 모든 금융기관들은 신용(통화)을 창출하는 민간 통화기관으로서 직간접적 형태로 서로 연쇄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통화는 한국은행만이 공급(발행)하는 것이 아니다. 민간 금융기관인 시중은행도 증권사도 보험사도 사실상 통화를 발행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지배해서는 안 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이나 유럽·일본 등 선진국이 많은 시행착오 끝에 금산분리 원칙을 법제화한 것이 아무 생각 없이 심심풀이로 한 것이 결코 아니다.
김광수 소장(cafe.daum.net/kseriforum)
김광수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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