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 승진자 대부분 ‘젊은 피’로 ‘이-최’ 라인
옛 구조본 출신들 금융-재무 라인 맡아 보좌
옛 구조본 출신들 금융-재무 라인 맡아 보좌
삼성그룹이 15일 사장단 인사를 통해 이건희 전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씨로의 경영권 승계를 본격화했다. 지난 20여년 동안 이어져온 ‘이건희-이학수 체제’의 뒤를 이어 ‘이재용-최지성 체제’로 전환하겠다는 밑그림을 내놓은 것이다. 이재용 부사장과 함께 옛 전략기획실 인사들이 삼성전자 핵심 경영진에 대거 포진해 그룹 경영 전반의 컨트롤타워 구실을 하게 될 전망이다.
■ ‘이재용-최지성’ 체제 구축 이번 인사의 핵심은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의 승진과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의 단독 경영체제 구축이다. 삼성은 이례적으로 사장단 인사에서 이 전무의 부사장 승진을 공개했다. 관례상 부사장 승진자는 후속 임원 인사에 포함되어야 맞다. 이 부사장이 본격적으로 경영 일선에 나서는 것이 인사의 핵심 포인트라는 점을 굳이 부인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 부사장의 보직인 최고운영책임자(COO)는 통상 수석 부사장이 맡는 자리다. 전무 재직 시절 맡았던 최고고객책임자(CCO)와는 무게가 다르다.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에서 실질적으로 ‘시(C) 레벨’급 최고경영진 자리에 오른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른 대기업그룹의 한 고위 임원은 “시오오는 사업과 재무 전반을 두루 들여다보고 최고경영자의 전략적 판단을 돕는 자리”라며 “사업 성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자리는 아니지만, 사실상 그룹 운영에 적극 간여하겠다는 뜻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최지성 사장은 삼성전자의 단독 대표이사를 맡는다. 삼성전자는 올 초 사업부문을 세트-부품으로 단순화해 최지성-이윤우 공동대표 체제로 운영해왔다. 부품 사업부문을 맡았던 이윤우 부회장은 이사회 의장을 맡아 사실상 경영 일선에선 손을 뗀다. ‘투톱 체제’를 단일 지도체제로 전환한 것이다. 최 사장은 이재용 부사장의 최측근이다. 이건희 전 회장이 전문경영인이자 최측근인 이학수 전 부회장(현 삼성전자 고문)과 함께 그룹을 관리해 온 것과 마찬가지로 ‘이재용-최지성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 부사장의 경영권 승계에는 법적인 걸림돌이 여전히 많다. 그를 둘러싼 경영 능력 논란과 도덕적 책임론도 현재진행형이다. 삼성은 한때 이 부사장의 경영 능력 논란 등을 의식해 단일 사업부나 계열사 경영을 맡기는 ‘우회로’를 검토했지만 결국 없던 일이 됐다. 삼성그룹의 고위 임원은 “오너는 전략적 판단이 주된 임무인데, 비교적 안전한 자리에 가서 사업 성과를 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공격이냐 수비냐’ 등 큰 전략적 판단과 그 결과를 갖고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 옛 회장 측근의 약진 이번 사장단 인사 폭은 예상보다 컸다. 사상 최대를 기록한, 올 초 25명이 승진·이동한 것과 맞먹는 수준이다. 두 차례 대폭 인사로 고참급 전문경영인 사장들은 대부분 퇴진했다. 불과 1~2년 새 윤종용·황창규·이기태·이상완 등 ‘이건희 세대’의 전문경영인들은 대부분 물러나고, 50대 초중반의 ‘젊은 피’가 대거 사장단에 진입했다. 이번에도 사장 승진자 10명 가운데 55살을 넘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한 대기업 임원은 “사장으로 승진한 전문경영인 대부분이 최지성 사장에 의해 발탁된 이들이고, 이는 곧 이재용 인맥이 주류가 됐다는 것”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옛 그룹 회장 비서실과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로 이어지는 인맥들은 이번에도 핵심 계열사와 보직으로 이동하거나 자리를 지켰다. 부회장으로 승진한 김순택 삼성에스디아이(SDI) 사장은 회장 비서실, 그중에서도 핵심으로 꼽히는 ‘재무라인’ 출신이다. 김 신임 부회장은 삼성전자의 신규 사업을 총괄하는 보직(신사업추진단장)을 맡았다. 삼성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지내는 등 재무통으로 잔뼈가 굵은 최도석 삼성카드 사장은 금융 계열사 전반을 관리하는 일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상훈 삼성전자 사업지원팀장을 사장으로 승진시킨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그룹 비서실 출신인 그는 과거 그룹 재무를 총괄한 김인주 전 사장(현 삼성전자 상담역)의 뒤를 이을 인물로 평가된다. 올 들어 전자 계열사의 분리·통합을 주도한 기획통이어서 ‘리틀 최지성’으로도 일컬어진다. 또 폐지했던 경영지원실을 부활하고, 공석이던 최고재무책임자(CFO) 자리도 다시 채웠다. ‘최지성-이재용 체제’를 중심으로 재무와 사업부문에 측근들을 전진 배치함으로써, 삼성전자가 그룹의 제조 계열사를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구실을 하겠다는 구도다. 그룹 고위 임원은 “그룹 경영은 계열사 사장단협의회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며 “사실상 맏형 격인 삼성전자에서 그룹 차원의 조정자 구실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독립 사업부제로의 전환과 경영지원실 부활 등을 뼈대로 한 후속 조직 개편과 인사를 16일 실시한다.
김회승 기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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